제주의 사계

제주올레 14-1코스

반야화 2015. 9. 30. 12:38

 

한 번 제주에 오면 한 두서너 개의 올레길을 늘 걸었지만 뒤늦게 세운 완주의 목표 때문에 마음이 바빠서 이제는 다른 건 볼 것도 없이 연달아서 올레길만 다섯 개는 걸어야 하는 강행군이다.

 

이틀째,14-1코스를 간다. 이 코스는 짠 바다는 없고 대신에 풋풋한 숲의 바다가 길게 이어지는 드넓은 초록바다에 풍덩 빠져 마음껏 유영하듯이 걷는 곳이다. 숲이 너무 짙어서 날씨가 아주 좋은 밝은 날이 좋다. 다행히 그런 날이다. 저지곶자왈, 청수곶자왈, 무릉 곶자왈이 있는데 거기다가 오설록의 새파란 차밭까지 보태서 하루 종일 푸르름에 몸을 맡기는 젊음의 코스여서 좋다. 언젠가 무작정 걷다가 길이 엉켜서 문도지오름까지 올랐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곶자왈에서 음식이 떨어지면 고픈 배를 달랠 길 없는 낭패에 처한다. 그날 오름 정상에서 낯선 올렛꾼에게 사과 한 조각을 얻어먹었던 그 달콤함과 한 조각의 포만감이 생생한 그곳으로 다시 오르는 길인데 초입에서 민가도 없는 곳에서 난데없이 승용차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무척 궁금했는데 마침 벌초 시기를 맞은 제주홍 씨 가문의 후손들이 주말을 맞아 다 모인 것 같았다. 참 보기 좋아서 사진으로 담았다.

 

처음 본 곳에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곳을 다시 가게 되면 그 환상이 깨어질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배고프던 그날에 문도지오름에서 본 풍경이 너무 좋아서 여유롭게 즐기고 싶었던 곳이었고 아주 높은 곳으로 생각되어서 문도지오름 정상을 딛고 서서도 그곳이 기억 속의 같은 곳인 줄 모르고 더 좋은 곳에서 쉬자며 걸었더니 지나고 보니 한가로이 말들이 풀을 뜯던 목가적 풍경이 있던 그곳이 문도지오름이었다. 물론 이번에도 발아래 펼쳐진 저지곶자왈의 끝없는 숲과 멀리 한라산까지 다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긴 했지만 그보다도 더 좋은 곳으로 가자며 친구를 이끌었더니, 이렇게 허망할 수가! 문도지오름에서 더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무척 후회가 되었다.

 

문도지오름에서 내려와서 다시 곶자왈길을 걷는다. 육지에는 이미 지고 없는 보랏빛 칡꽃이 뒤엉켜 새파란 숲에서 빛나게 보이고 향기는 숲 속에 갇혀 내 몸으로 젖어들고 있었다. 숲을 다 빠져나오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곳이다. 그런 곳에도 제법 넓은 잔 뒤 밭이 있어서 잠시 쉬면서 차와 간식을 먹으려고 앉아서 커피를 한 잔 채워놓고 간식을 먹다가 잔을 보니까 커피는 감쪽같이 없어지고 빈 잔만 누워 있었다. 흙바닥에 검은 커피가 쏟아지면 그 흔적이 남지만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곶자왈이 홀랑 다 마셔버렸다. 곶자왈은 그런 곳이다. 그걸 보고 둘이서 깔깔거리며 조금 남은 뜨거운 물에 다시 커피를 타서 마시니 칡 향에 얹어 마시는 커피는 그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맛과 낭만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저지곧자왈의 심장부를 뚫고 들어앉은 쉼터에서 작은 추억 하나를 더 얹어 두었다.

 

짙은 숲에서 헤어 나오니까 마치 하늘이 금방 열린 것 같았다. 밝은 빛의 비타민을 흡수하면서 오설록에 도착했다. 중국 관광객이 많이 찾은 걸 보니 이곳도 유명세를 타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넓은 녹차밭이 푸르고 각종 차와 화장품, 향수 여자들이 선호하는 상품까지 두루 팔고 즐기는 곳이니까 와볼 만한 곳이긴 하지. 오설록을 돌아 나와서 차도를 따라 한참 걸으면 두 번째 곶자왈인 청수곶자왈로 들어간다. 이곳은 다른 곶자왈의 울퉁불퉁하고 좁은 길에 비해서 반듯하고 넓은 길이 거의 직선으로 나 있는 것이 달랐다. 개인 땅인지 솦 속에 말을 키우는 농장이 있고 길에는 말의 그 푸짐한 배설물이 쌓여 있었다. 그래도 길이 편하고 좋아서 곶자왈 같지 않게 쉽게 걸어 나오면 경계도 모호한 무릉 곶자왈로 이어져 다시 깊은 숲길을 걷는다. 먼 길이지만 함께 가는 길동무가 있다면 그 거리는 나도 모르게 좁혀진다. 땅의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가 더 멀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밀림 같은 17킬로미터의 하늘을 뒤덮은 숲길을 다 지나서 끝 지점인 인향동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휴식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평화로를 달려서 퇴근하듯이 돌아와 땀을 씻고 나면 또 하나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맛보면서 내일의 일정을 잡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 된다.

 

 

 

 

 

 

 

 

 

 

 

 

 

 

 

제주홍 씨 일가의 벌초 모습

 

 

 

 

 

 

 

 

 

 

 

 

문도지오름의 평화로운 말들

 

 

 

 

 

 

 

 

 

 

 

문도지오름에서 보는 한라산

 

 

 

 

 

 

 

오름에서 하산, 메밀밭

 

코끼리 같은 곶자왈의 덩글 숲

 

 

귀한 약재인 꾸지뽕나무 열매

 

 

 

 

곶자왈에도 잔디밭이 있다.

 

 

 

오설록의 차밭에서

 

 

 

 

 

 

 

 

 

 

 

 

청수곶자왈 입구

 

 

 

 

 

 

 

 

 

 

 

 

 

영동케(봉 근물)

 

인향동 버스 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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