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사계

제주올레 12코스

반야화 2015. 9. 30. 12:39

2013.4.8일

코스: 무릉 생태학교-평지교회-신도 생태연못-농남봉 정상-산경 도예-신도 포구-한장동 마을회관-수월봉 정상-엉앙길 입구-용운천-당산봉 입구 생이기정-용수포구.

 

올레 12코스는 내게 아픈 기억으로 남은 곳이다. 어떤 길이길래 나에게 낙상사고를 입히고 중도에 포기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오기가 발동해서 다시 도전하는 코스다. 계획대로라면 오늘은 가파도에 가기로 했으나 간밤에 태풍급 강풍이 불더니 아침이 되어도 잦아들지 않아서 배를 탈 수 없을 것 같아 올레 12코스로 향했다. 제주도에 잠시 있는 딸은 올레를 걷는 건 처음이다. 끝까지 잘할 수 있을지 염려하면서 차를 시작점에 두고 끝 지점에서 콜택시를 타고 차 있는 곳까지 돌아오기로 하고 나선 길인데 시작부터 바람에 밀리고 저항하며 바람과의 사투를 벌이는 시간이 되었다.

 

다소 지루한 양배추 들판을 지나고 농남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나무들이 바람을 막아 주어서 한결 걷기도 편하고 길가엔 고사리도 많고 아기자기한 오솔길이 참 맘에 들었다. 거기서 모녀는 바나나를 나누어 먹고 농남봉 정상에 섰는데 바다와 조각보 같은 들판이 한눈에 펼쳐지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올레길은 잠시 쉬어가는 재미를 알아야 여행다워지는 시간이다. 모녀는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농남봉 넘어가는 길에 꽃 이름도 풀이름도 아는 게 없는 딸에게 자연학습을 시키면서 넘다 보니 폐교에 들어선 도예마을이 나오고 아직도 구석구석에는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놀이터가 그대로 있고 그네는 바람만 태우고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바닷가로 가는 길, 신도1리가 나오고 좀 더 가면 신도 2리가 나온다.

 

쉬어가고 싶은 한적한 바닷가에 아주 작고 이쁜 카페가 있다. 바람에 밀려 기운도 빠지고 너무 추워서 들어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들이 곳곳에 붙어 있고 정갈하고  낭만이 넘치는 무인카페였다. 직접 토스트를 굽고 커피를 내리고 잼을 꺼내 발라서 맛있게 먹고 설거지까지 깨끗하게 해 두고 나오는 곳이다. 누가 관섭을 하지 않아도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이쁜 사람들만 다녀가는 곳 같았다. 이층에서 간식을 맛있게 먹고 다시 신도 2리 해안길과 포구를 지나면 한장동이 나온다. 우리는 여기서부터 환장하며 걷는 환장 동이라 불렀다. 수월봉을 바라보며 걷는 길인데, 팥고물처럼 곱게 갈아놓은 밭이랑과 초록색 보리밭에 이는 푸른 잔물결이 춤추는 조각난 들판 풍경에 환장하고, 수월봉에 우는 바람소리에 환장하고, 수월봉 그저께 굽이친 해안선을 따라 차귀도와 풍력발전소의 바람개비의 힘찬 회전을 보면서 모두가 상상 이상이어서 환쟁이란 말로 개명한 동네를 걷는데 바위 절벽의 신비한 지질층에 또 환장했다. 어감은 안 좋지만 동네 이름에 글자 하나 바꿔 부르니 환장할 볼거리가 무척 많은 길이었다. 신비한 해안절벽에 있는 녹 고물의 사연까지 알뜰히 보면서 걷다 보니 배가 고픈데 먹을 게 없어 난감한 일이 생겼다.

 

먼길을 나설 때는 허기지면 큰일이다. 혼자 갈 때는 먹을 걸 많이 가져가서 늘 남겨오는데 오늘은 딸하고 중간에서 맛있는 걸 사 먹자며 바나나만 달랑 넣어서 배낭을 짊어지고 나섰더니 웬일이야! 수월봉 휴게소가 문울 닫았다. 차귀도까지는 가야 음식점이 있고 거기까지 가려면 너무 먼데,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가는 길 절벽에 찔레가 있었다. 찔레가 뭔지도 모르고 처음 보는 딸에게 찔레를 꺾어서 잎을 따고 가시를 따서 주니까 맛있다고 먹으면서 허기를 면할 것 같다고 해서 나도 몇 개 먹고는 이연실의 노래를 불렀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엄마엄마 부르면서 따먹었다오"이렇게 허기를 겨우 면하고 차귀도에서 해물 뚝배기를 먹었는데 금강산도 식후견이란 말이 명언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포만감에 더욱 느긋하게 걸으며 세 번째 봉우리인 당산봉에 올랐더니 또 환장할 수밖에 었었다.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서 험상궂은 바람소리와 천둥 같은 파도 울음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소용돌이가 무섭도록 위협적인 길을 걷는데 이쁜 토끼길 생이기정 낭떠러지에 갑자기 가마우지 떼들이 군무를 이루며 바다로 날아들고 차귀도와 새들의 군무가 어우러진 바다 풍경에 참으로 환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환상적인 풍경을 뒤로하고 끝 지점인 용수포구로 가는 길에 해가 어느새 바다에 빠질 듯이 낮게 떠 있어서 이왕이면 낙조까지 보고 가자며 카페에 차를 마시면서 몸을 녹이고 있으니 바다가 물들기 시작하고 또 한 번 환장할 풍경을 하나 더 추가하면서 오늘의 일정을 끝내고 콜택시를 불러서 탔더니 6시간도 더 걸었건만 택시는 직선으로 달려 10분 만에 우리 차 있는 데까지 갔다.

 

올레길은 눈이 호강하고 발이 죽도록 고생하는 길이다.

 

 

 

 

 

 

 

 

 

 

 

 

 

무인카페의 장식품

 

 

 멀리서 보이는 수월봉

 

 

 

 

 

 

 

 

 

 

 

차귀도 가마우지 군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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