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양평 물소리길

반야화 2015. 3. 13. 11:42

봄이 오는 길목에서,

해마다 맞이하는 봄이지만 봄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은 그 틀별함을 보여주기엔 좀 이른 것 같았다. 제주에서 두 번 만나 길동무가 된 사람을 다시 서울에서 만나 양평 물소리길을 걷기로 하고 이른 아침에 나섰다. 아침 출퇴근 시간에 차를 타기는 참 오랜만이다. 버스와 지하철을 환승하면서 바쁜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툭 튀어나온 배낭을 들이미고 서 있으려니 무척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 복잡한 차 안에서 놀러 가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아서 복잡한 공간을 더 비좁게 하는 민폐를 끼친 셈이다.

 

분당에서 다시 신분당선을 환승하는데 놀라운 것은 시발점에서 이미 한 차 가득 차버렸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들어갔는데도 출발점이어서 다행히 서 있을 공간은 있었다. 지각을 워낙 싫어하기 때문에 마음은 바쁜데 계단을 맘대로 오르내릴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옛날 생각이 문득 떠 올랐다. IMF 시기에 연일 실직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걱정도 되고 마음도 많이 아팠는데 그때도 우리는 열심히 아침 비좁은 출퇴근의 공간에 배낭을 지고 미안한 마음으로 차를 타고 다녔다. 복잡한 것이 좋을 리 없는데 그때만큼은 복잡하다는 것이 그렇게 고 마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 어려운 시기에 출근하는 사람이 그래도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그런 모습을 보니 지금도 역시 더 나아진 것이 없는 미취업자나 실업인구가 많다고 하는데 출근하는 사람이 넘친다는 것이 이 얼마나 아름다운 혼잡 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왕십리에서 경의 중앙선을 타고 양수역에서 내려 물소리길을 찾아가는데 이미 머릿속엔 코스의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몇 개의 마을길을 지나도 물소리가 날만한 길은 나오지 않았고 억지로 조성한듯한 야산으로 오르는 길이 이어졌다. 우리는 양평에서 한강 하구 쪽으로 이어지는 강변을 걸으면서 물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강을 바라보며 걷는 길을 연상했는데 코스의 반을 지나도 강변으로 가지지 않고 계속 야산과 마을길만 이어졌다. 어디라도 좋은 푸른 계절이 아닌 탓도 있지만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지금은 어딜 가도 마찬가지로 꽃이 피기 전에는 그곳에 꽃이 살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코스를 도는 도중에 역사적인 인물의 유적을 세 곳이나 만났다. 그나마 그것이 길에서 얻은 보람이었다. 한음 선생의 신도비가 있었고 정창손 묘소와 몽양 선생의 생가와 기념관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좀 더 강 쪽을 향해 내려가면 길 양편에 몽양 어록이 새겨진 시비 같은 것이 쭉 널어서 있다. 어록 길이 끝나는 지점에 음식점이 있어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이제야 물은 보이는데 길은 다시 꼬부라져 강가로 나아갔다. 차도 밑으로 내려서서 강가로 다가가니까 곳곳에 저수량이 바닥을 보이는 가뭄이지만 그래도 한강은 유유히 바닥을 보이지 않고 흐르는 걸 보니 한양이 도읍지로 선택된 배산임수의 길지임을 알 것 같았다.

 

여름이면 갈대숲과 물과 어우러진 강변이 그림같이 아름다울 것 같은데 지금은 크게 감흥이 일지 않았다. 약 5시간을 걸었더니 마지막 지점에 국수역이 있고 거기서 다시 경의선을 타고 해기 있을 때 집으로 돌아왔다. 요즘 운동이 부족하던 차에 걸을 수 있도록 찾아 준 부산 손님과 기분 좋은 한 때를 보냈다.

 

 

 

 

몽양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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