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양양 디모테오 순례길(신년걷기)

반야화 2020. 1. 3. 10:41

코스: 양양 송이벨리-MTB 라이딩 길-오상 영성원-부소 치재-성 클라라 수도원-죽도해변-죽도-휴휴암

 

이틀 전에 송년 걷기를 하고 이어서 신년 걷기를 하면서 숫자로 치면 일 년의 시차처럼 보이지만 물리적인 면에서 무엇으로 경계를 삼아야 할지, 이럴 땐 마음으로 경계를 지으면서 긴 길이라도 하나 걷고 나면 이것과 저것의 경계 같은 선이 되어서 시작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숱한 길 중에서도 신심 가득한 성지를 돌아보는 순례의 길을 걸어서 어느 때보다 특별한 시작이 된 듯하다. 더구나 길 끝에는 청아하고 드넓은 바다를 걸었으니 묵은해의 찌꺼기는 다 씻어낸 듯하고 정화된 마음속에 새로운 설계도를 그려녛으면 된다.

 

2020년, 한 해의 첫 장을 열고 나면 시간들이 유수 같이 가 아니라 뭉텅뭉텅 잘려나가는 것처럼 빠르게 느껴진다. 이제 와서 특별히 이루려는 기대치도 없는 삶이 왜 그렇게 바쁘게 지나가는지 시간을 따라잡기가 힘겨워진다. 벌써 새 달력에는 몇 개의 동그라미가 그려지는데 그것들이 다 놀기 위한 일정들이라는 게 좋기도 하면서 이제 내 역할은 없는 것인가 아니면 내 쓸모의 정년을 맞은 것인가 때로는 잉여인간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내가 만족하는 시간들로 채우면서 행복한 시간들로 쌓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게 아닐까로 결론지 우려고 한다.

 

한 번 들어본 적도 없는 길을 간다.천주교 성지순례길인 디모테오 순례길을 시작으로 길 끝에 있는 바닷가 휴휴암을 돌아왔으니 종교적인 면에서도 나에겐 의미 있는 행보였다. 불교도여서인지 솔직히 휴휴암에 더 관심이 갔다. 어쩠든 두 가지를 다 걷는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먼저 38선을 접하고 있는 양양군 양양성당에서 출발점이 있지만 우리는 송이벨리 휴양림에서 시작해서 걸어가는데 처음엔 순레 길이 아닌 줄 알았다. 산악자전거가 다니는 임도이기도 하고 생각하던 이미지와 달라서 어딘가 한적하고 이쁜 오솔길이 아닐까 생각되어서다. 그러나 한참 걷다 보니 임도이면서 자전거길, 순례길이 하나로 되어 있었다. 깊은 산길을 한참 걸어서 오성영 성원을 넘어서니 점점 순례길다운 길이 이어지고 가보지 못한 울창한 소나무 숲을 돌아 나오는 이쁜 길도 있었다. 신심으로 걸었다면 좀 더 자세하게 돌아봤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전체 18킬로가 된다는 길을 다 걷기엔 해도 짧고 멀리서 가야 하는 접근이 어려워서 반만 걷고 나머지는 또 아름다운 이미지로 마음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요즘은 순례길이 한적하고 조용하게 남아 있을 수가 없다. 좋은 곳이면 어디든 정보가 많아서 인파가 몰려들고 관광지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도 그 길의 의미를 찾으려면 길동무 한 사람만 있어도 신심으로 걸으면 순교자의 고난을 되새길 수도 있고 가르침을 마음 가득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 길은 디모테오 신부님이 38선이 그어지고 국토 반쪽이 공산당 체제가 되어버리자 9명의 수녀님과 일반인까지 38선 이남으로 피난시키고 본인은 이북에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면서 결국 돌아오지 못한 신부님의 뜻을 기려서 이름 붙여진 길이 된 것으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부소 치재에서 차로 이동해서 성 클라라 수도원에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수도원의 분위기만 느꼈지만 높고 깊은 산속에서의 잠시라도 기거하면 절로 기도가 되는 구심처가 될 것 같은 수도원이었다. 수도원을 잠시 둘러보고 다시 차로 이동해서 동산리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죽도해변을 걸어서 죽도로 가는데 겨울바다가 너무 아름다웠다. 시커먼 겨울색이 아닌 푸르른 색감이 좋고 파도가 다져놓은 단단한 젖은 모래를 걷도라니 얼마나 좋은지 시멘트와 자갈길을 걸오 온 피로가 다 씻어지고 마음속에 잠재되어 얌전히 있던 어린아이들이 마음 밖으로 다 뛰쳐나와 현재의 내가 도로 그 마음속으로 들어가 버린 나의 이중성, 아니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의 이중성이 드러나는 순간도 너무 좋았다.

 

죽도 둘레길을 돌아나오니 멀리 맞은편에 보고 싶었던 휴휴암이 보인다. 해는 많이 기울이지고 마음이 급해서 얼마나 혼자 급했던지 암자에 도착하니 벌써 해수관음상에 반은 산그늘에 가려지고 있었다. 전각문은 열어보지도 못하고 바다에 있는 유명한 연화당 법당으로 내려갔다. 넓은 바위가 낮고 평평한 반석이 얼마나 큰지 놀라울 정도 고 왼쪽 건너편 바닷길 아래 해변에 누워 있는 불상 모양의 기다란 바위가  있어 와불로 삼고 넓은 마당바위를 법당 삼아 거북형상의 바위들이 기도를 드린다는 유래가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모든 게 일체유심조로써 생각하고 보이는 데로 마음을 먹으면 되는 것이다. 번뇌를 쉬어가는 곳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장소는 번뇌를 씻을 만 하지만 분위기는 시끄럽기 그지없어서 번뇌가 쌓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되었다. 시간이 부족해서 세심하게 살피지 못해서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와야 했지만 짧게나마 그곳에 다녀온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 한 해의 시작을 푸른 바다와 순레 길에서 열었으니 뭔가 예감 좋은 시작이다.

 

송이벨리 들머리

송이벨리 휴양림

 

오성영성원

 

 

 

 

 

부소치에서....

 

성글라라 소도원

 

 

 

 

 

 

 

 

 

 

동산리 해변

 

 

 

 

죽도해변

 

 

 

죽도암 법당

 

 

죽도정

 

죽도에서 보이는 원경

멀리서 보이는 휴휴암

대장님의 고독

 

 

 

 

 

해수관음

 

 

달마대사를 닮은 형상

 

 

 

 

연화 법당, 넓은 바위 법당

와불 암

돌아오면서 차창으로 찍은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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