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송년걷기(광교산)

반야화 2019. 12. 31. 01:14

수원 6 색길 중 산너울길,

2019.12.31일, 어떤 날의 특별한 의미는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거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와 다르지 않지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 그날은 특별해지는 날이 된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송년 걷기란 의미를 부여하고 하루를 마감하니 뭔가 어제와는 다른 날이 된 것 같다. 어제와 오늘의 경계선을 긋듯이 산 하나를 걸었다.

 

일년 전, 달력 한 장을 받아 들었을 때 커다란 백지에 일 년이란 테두리 안에 석류알처럼 촘촘히 들어찬 숫자들을 선물처럼 받아 들었을 때는 뭔가 많이 남아 있고 가득 채워져 있다는 넉넉함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 빼곡히 들어찬 날들을 하루하루 내보내고 나니 보석 같은 알들이 다 빠져버리고 구멍만 숭숭 난 석류껍질만 남아 있는 것 같은 일 년을 오늘마저 버리고 왔다. 가는 해를 배웅하는 건지 오는 해를 마중하는 건지 모를 한 해 마지막 날의 행보를 난 마중보다는 배웅이라고 하고 싶다. 그 귀한 날들을 허송할 때도 있었지만 뒤돌아 보니 숱한 생명을 품고 잠들었던 동토의 산천에 푸릇푸릇 생명들을 피워 올리는 걸 지켜봤고 이름도 성도 모르던 까만 나무들은 진달래, 개나리라는 이름표를 얻어서 꽃 피우고 잎 피우는, 세상은 새 생명들로 가득 찼을 때 나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 봄물 결 따라 올라오고 단풍 따라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내가 사는 곳에서 정지되는 겨울을 맞이하고 나의 행보는 끝이 났다. 그리고 오늘 일 년이란 시간들을 하루하루 빼내으면서 행복했노라고 말하고 잘 가라는 배웅을 하고 왔으나 끝은 시작이란 함의를 가졌으니 우리는 담담하게 이어가는 시간이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다.춛다,덥다라는 건 이미 너무나 많이 경험한 것이어서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위축되는 일은 없다. 요즘은 기온보다는 먼지 없이 맑은 날이면 가장 좋은 날이란 생각을 한다. 하늘은 티 없이 맑고 푸르러 진면목을 드러내고 차가운 바람은 마치 어린 시절 고향집 황토방에 군불을 지피고 나서 한창 달아오를 때 창호문 열어젖히면 확 밀려들던 그 알싸한 공기 맛. 그것 같았다. 그래서 매운 공기 맛이 참 좋았다.

 

광교산 곳곳에 참 많이 드나들었다.멀리 가지 못할 때 운동삼아 갈 수 있는 가까우면서도 길이 참 많은 산이다. 편한 길과 험한 길까지 갖추고 있으며 다른 산과 이어서도 갈 수 있는 경기남부의 중심이 되는 진산이기도 하고 물의 도시 수원 여러 호수의 물을 발원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광교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의 행복과 건강의 원천이기도 한 산 하나가 보배롭기까지 하다. 평소에는 경기대에서 시작을 했고 더러는 수지성당 쪽으로도 갔는데 어느 코스로 가든 다 길이 편하고 아름답기도 한 산길인데 오늘은 처음으로 성복역에서 시작해서 경기대로 나오는 길이었지만 처음 가는 길처럼 새로웠다.

 

시간이란 형체도 없고 보고 만질 수도 없는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거다.그러나 그 무게와 힘은 당해낼 자가 없다. 그래서 가장 무섭다. 무소불위의 권력으로도 시간을 이기지는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그 무게와 힘을 저항하자 않으면서 순리대로 따르고 나름대로 행복을 잘 요리하면 된다. 지난해도 비교적 정신적 부엌에서 행복의 요리를 잘 만들어 낸 것 같다. 새해 애도 이제까지 맛보지 못한 어떤 행복의 요리를 만둘 수 있기를 바라며 마지막 밤은 깊어가고 내 마음도 기꺼이 저물어 간다.

 

 

 

 

 

 

 

 

 

 

 

 

 

 

광교산 시루봉에서 노루목으로 하산하는 계곡으로 다 내려오면 저수지 두 개를 만난다.계곡에는 얼음장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어느새 봄맛을 느끼게 해주는 듯하다. 계곡에는 몇 개의 나무다리가 놓여 있어 건너는 재미와 물소리가 들리는 계곡이 너무 좋아서 다시 가야겠다고 약속하며 걷다 보니 처음으로 알게 된 상광교 마을이 나오는데 아직은 농가주택만 있지만 곧 개발이 될 듯한 좋은 대지가 많고 터가 좋아 보였다. 상광교 버스종점에서 13번 버스를 타고 나오면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고 차로 반딧불이 화장실까지 나오면 광교저수지가 있다.

광교저수지 둑길

 

광교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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