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서북능선-중청-대청-오색
20년 만의 반전이다. 그때는 그랬어, 서울 근교산만 다니다가 어느 날 친구와 대청봉을 한 번 보겠다고 가을에 한계령에서 출발했는데 죽을힘을 다해서 올랐지만 결국 중청도 못 가서 내려와야 했다. 내려오는데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겨우 내려왔는데 얼마나 힘들었던지 차멀미를 너무 심하게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번에 한계령으로 가는데 어디서 올랐는지 길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나는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 대청봉을 거뜬히 오르고 남보다 빨리 하산해서도 멀쩡하단 말인가? 그건 바로 연마야. 우리의 몸과 정신은 나이와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스로 얼마나 연마하고 잠재력을 얼마나 끄집어내느냐에 따라 다 쓸 수도 있고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물론 한계는 분명히 있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한계점을 최대한 늦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
2월 하순에 고운 설경을 보기란 쉽지 않다.설알산하면 언제나 눈에 덮여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설악산에서 만족할만한 설경을 볼 수 없어서 몇 번을 실망했는데 그건 바람이 너무 심해서 바닥엔 많이 있어도 나뭇가지에 남겨두지 않는 탓도 있어 보였다. 어제도 예보는 바람이 심하다고 해서 크게 기대는 안 했는데 뜻밖에 아름다운 설경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바람은 소리만 요란하게 낼뿐 바람이 노는 곳은 키 큰 나뭇가지 꼭대기에서 가지를 붙잡고 놀고 있으면서 밑으로 내려보내지 않아서 몸을 흔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청봉에선 바람의 소용돌이에 그대로 노출되어서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바람이 나무 대신 나를 흔들고 놀자 해서 얼른 뿌리치고 도망쳤다.
수많은 발길들이 지났는데도 때묻지 않는 눈길을 걷고 있노라면 자유를 넘어선 방종의 보헤미안이 되는듯한 성향이 나에게도 분명 내재해 있음을 보면서 살짝 그 마음을 향유하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그 한 때만이라도, 나의 모토이기도 한 `정도`를 떨쳐버리는 내 생활의 편린을 행복의 요소 하나로 추가시키는 날이 된다. 산이 좋은 건, 눈이 좋은 건 내가 있어야 하는 모든 질곡에서 벗어남이어서 너무 좋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또한 그렇게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을 만들 줄 알아야 되고 그런 곳을 찾아 떠날 줄 알아야 삶을 윤택하게 살 줄 아는 현명함이 있는 멋쟁이가 된다. 그걸 알기에 난 또 설악산 눈밭에서 도식적인 걸 벗어던지고 행복했다.
가리봉, 주걱봉 귀때기청봉
중청과 대청
대청봉
울산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