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러 내야 사는 세상에 걸래 내지 않아도 되는 게 있다.
공기를 거르고, 물을 거르고, 말과 행동까지 걸러 내야 사는 세상이 되었는데 걸러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다면 그 몇몇 중에 꽃향기와 꽃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집 밖을 나서면 3월의 바람이 어디선가 고이 향기를 받아서 내 발길에 뿌렸는지 발끝에서부터 온몸에 매화향으로 스미게 해 준다. 향기를 실은 바람길을 따라 산책을 하는데 매화는 보이지 않고 향기만 그윽이 풍겨오는 길을 따라가니 작은 풀포기도 언 땅 뚫고 봄을 가득 담은 대지의 그릇에 담기려는 듯 마구 솟구치는 생명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이 너무 곱다. 산책길 끝에는 매화가 숨은 듯 야산 기슭에 피어서 향기를 숨기지 못하고 세상을 향하여 싱그러운 스프레이를 하는 그곳에는 어느 문중의 묏자리에 하얗게 꽃을 피운 것이 마치 소복 입은 미망인처럼 곱고도 순결한 묘지기로 사랑하던 이를 못 잊어 온몸으로 분봉을 향기로 덮으며 끌어안고 그리워하는 듯하다. 매화가 피는 봄이면 옛 선비님도 향기에 취했는지 '매화는 일생을 추위에 떨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라는 멋진 시를 남겼다. 이 순간 내가 봄으로 가득 찬 대지의 꽃 쟁반 속을 걸으며 엣 시인의 정취를 재현하는 상황 속을 거닐고 있는 듯하다.
걸로 낸다는 것은 정제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를 말한다. 요즘 들어 특히나 걸러 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그만큼 세상이 혼탁해졌다는 결과일까, 옛날엔 막걸리를 걸러 내고 양젯물이나 걸레 내는 줄만 알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공기를 걸러 내고 물을 걸러 낼 줄 어찌 짐작이나 했겠는가, 심지어 요즘은 sns라는 신종 매체들이 등장하면서 걸러 내지 않은 언동들로 인해서 스스로를 망치는 시대까지 왔다 정제되지 않은 말들을 마구 쏟아내면서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말의 찌꺼기들이 살아나서 출세하려는 자의 발목을 잡는 자승자박이 되기도 하고 겉보기와는 다른 숨겨져 있는 내면까지도 맘만 먹으면 다 들춰내는 기술이 또한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편리한 만큼 그런 세상을 따라가려면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 생각 좀 한 후에 쏟아내야 하고 그 생각이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의 필터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봄을 맞이하여 환영하는 마음은 마구 쏟아내도 되는 봄의 찬사로 가득해도 좋고 봄을 있는 그대로 날 것으로 다 취해도 좋으리.
냉이꽃, 아주 작은 꽃이 잔디에서 소복이 올라와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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