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 같은 사람들과 여행을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전 날 영취산에서 분홍 물감에 흠뻑 빠졌다가 바로 경주로 내려가서 하얀 물감으로 덧칠을 하고 새로 그리듯이 내 마음은 온통 봄을 그리는 도화지가 되었다. 우선 꽃만 잔뜩 그리고 여드레만에 돌아서서 올라오는데 메마른 가지에 새싹이 돋아 빠뜨린 잎까지 마저 그려 넣은 봄을 완성하고 돌아왔다.
봄은 누구나 마음의 화폭을 펼치고 마음껏 물감을 뿌려서 밑그림 없어도 멋진 유화를 그리는 화가가 된다. 경주의 관문인 큰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파도의 너울처럼 이거리 저 거리에서 꽃물결이 춤추듯 출렁이며 다가온다. 그 길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끊임없는 벚꽃길이 연결되는 길고 긴 꽃띠가 형성되어 있어서 우리는 꽃띠에 메인 채 풀려나지 못해도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마치 꽃 감옥 같았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나 짫은 일장춘몽처럼 지나간다. 우리가 가는 날 하얗게 만개했던 꽃이 일주일도 못 견디고 낱낱이 흩어져 꽃비를 내려서 거리는 하얀 나비의 주검 같은 꽃잎들이 날리고 있는 가운데 가로수는 연두색 이파리를 피워내고 있었다.
우리가 경주에 머무는 동안은 조금 쌀쌀했지만 그 덕에 맑고 투명한 날씨가 이어져 더욱 선명한 봄색체를 그릴 수 있었다. 첫날 반월성의 벚꽃을 보고 흥무공원으로 가서 경주 최고의 벚꽃 절경이 있는 김유신(흥무대왕)의 릉에 들어섰더니 조금 늦은 오후였지만 모든 빛이 릉의 봉분에만 비추듯 스팟랏이트 조명 효과 같은 빛을 받고 있는 절정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릉을 보고 감탄했다. 흥무 대왕릉은 신라시대 다른 고분에서는 볼 수 없는 완벽한 균형미를 갖추었는데 난간석이 있는 둘레에는 십이지상의 멋진 조각이 또한 볼거리인 릉은 신라인의 작품을 감상하는 듯해서 무척 좋았다. 그리고는 릉이 모셔져 있는 수도산 꽃길을 한바뀌 돌아서 충효동 마을길을 천천히 걷다가 마을에 이쁜 카페에서 차도 마시고 숙소로 돌아가는 동안 해가 저물도록 즐거운 하루를 마쳤다.
이튿날은 전국에서 대형 대절버스들이 인파를 풀어놓기 전에 우리는 일찍 보문호수로 갔더니 대체로 한가한 꽃길을 걸을 수 있었고 조금 지나니 인파가 밀려와서 우리는 다시 불국사로 달아났다.보문호수는 그 큰 호수 둘레가 다 벚꽃길이다. 물은 어떤 풍경과도 잘 어울리는 그림 속의 필수 요소다. 푸른 물은 만수 위고 호숫가 하얀 꽃은 물속으로 가지를 드리우고 있어 꽃들이 부리는 멋은 전국 최고의 벚꽃 명소를 만들어 준다. 좋은 친구와 꽃길을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날씨까지 좋으니 우리들의 여행은 이 봄 최고의 순간에 있었다. 발길은 다시 불국사로 이어지고 불국사 역시 보문호수에 뒤지지 않는 벚꽃축제를 펼치고 있었다. 경내 담장 밖에는 넓은 공간이 다 꽃밭이다 주차장에서 올라서는 순간 마치 한겨울에 쌓인 눈이 그대로 얼어붙어 있는 것 같은 설경처럼 하얀 나무들이 빽빽산 꽃숲을 이루고 있다.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준비해 간 점심을 먹고 내친김에 석굴암까지 가서 잠시 참배를 하고 바로 토함산으로 갔더니 이제까지 붐비는 인파들을 따돌리듯 피해서 너무 조용한 휴식 같은 오후인데 아직은 자고 있는 진달래 꽃길을 걸어서 정상 인증을 하고 돌아 나왔다.
경주의 꽃을 가장 완벽하고 즐기고, 우리는 부산으로 갔다.해파랑길이 시작되는 시작점인 부산 이기대길을 바다를 끼고도는데 이 또한 이채로운 행보다. 해파랑길은 강원도 쪽에 두 코스 걸었으니 이제 시작과 끝을 걸어본 셈이다. 이기대길을 동생말까지 끊어서 걷고, 해운대 해변에서 철없이 뛰놀다가 요즘 제철을 맞은 기장 멸치축제를 앞두고 잘 준비된 거리의 식당에서 멸치회무침과 조림을 이른 저녁으로 먹고 경주로 돌아가는 꽉 찬 하루가 너무 행복한 여정이었다. 마치 봄은 우리들의 전유물인양 넘치게 즐기고 집으로 돌아와 하나하나 되짚으니 행복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함께 봄을 즐길 수 있는 길동무가 있어 더욱 행복한 순간을 만들 수 있었던 여행이어서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 전하면서 봄 그림의 화첩을 접는다.
반월성과 첨성대일대
반월성의 벚꽃이 무겁도록 휘늘어졌다.
수도산 가는 길, 서천 건너편에서 김유신(흥무대왕) 릉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의 초입
김유신 장군(흥무대왕) 릉
내가 본 신라시대의 다른 고분과 비교해서 가장 완벽하고 아름답다.
난간석과 사이사이에 십이지상의 조각이 돋보이고 봉분도 너무 크지도 않고 전체적인 균형미와 형태가
너무 아름답다. 비석에는 모자를 메우고 승자로 바꾼 흔적이 남아 있다.
릉을 돌아 나가는 일방통행길
보문단지로 가는 길
보문호수
작은 연못에도 꽃이 가득 들어차 있다.
보문호 현대호텔 앞에서...
불국사 꽃밭에서...
석굴암
부산으로 가서 이기대길 초입 언덕을 오른다.
해운대 해변에서 신발을 벗고 즐겁게 걸었다.
해운대 달맞이 공원길
부산 용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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