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뜨거운 단상

반야화 2023. 8. 8. 13:06

입추도 지나고 풋밤이 영글어가는 가을의 문턱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다. 여름이 점점 길어지고 더워는 점점 심해지니 아직은 여름의 정체성이 더 짙어 그 문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한동안 여름의 문 뒤에서 서성이게 될 것 같다. 사계절을 석 달씩 사등분으로 나누면 정확하고 뚜렷하던 우리나라 계절이 이제는 봄가을은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여름과 겨울은 기세 등등 하게 영역을 넓혀가며 다른 계절을  침범하고 있다.

너무 습하고 더워서 집안을 피서지로 생각하고 지내다가 뒷산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노란 망태버섯이 궁금해서 갔더니 작년보다 좀 늦게 갔다고  어느새 망태버섯은 피었다가 노란 치마는 이미 낡아서 쭈굴쭈굴하고 과감하게 아예  벗어버린 것들이 흉하게 보이고 있었다. 그렇듯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데 그때를 놓치고는 기다려주지 않은 버섯을 원망하며 땀으로 범벅된 얼굴을 닦으며 내려왔다.

내 스마트폰은  충직한 나의 비서다. 그 속에는 나의 역사가 고스란히 쌓여 있다. 언제든 원하면 그 기록들을 들춰내 보여준다. 물론 거기에는 환원하는 사계가 다 들어 있지만 때가 되면 계절이 주는 기쁨을 다시 채워 넣는다. 난 그것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그뿐 아니라 나의 비서는 살아가는 일상과 일정을 기록해 주고 길을 가다가도 은행 업무까지 봐주는가 하면 길도 찾아주고 모르는 건 다 알려주는 스마트한 비서인데 가장 좋은 건 추억을 간직했다가 주인이 원하면 언제든 찾아서 보여주니 이만큼 충직한 비서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한가지 불안한 건 하나를 잃으면 전부를 잃게 한다는 거. 그러니 언제나 나를 떠나면 큰일이다.

오늘도 비서에게 부탁해서 지난해 망태버섯을 언제 봤는지 물어보니 8월 1일이었다. 허탕치고 돌아오는 나에게 비서는 음악을 들려주며 위로를 한다.

너도 꽃이란 걸 나는 안다. 그래서 너의 이름 뒤에 꼭 꽃자를 붙여서 닭이장풀꽃이라고 부른다  작고 단순하지만 자세히 보면 얼마나 청초하고 아름다우냐, 어쩜 그리도 이쁜 색감을 지녔더냐. 그래서 너를 좋아해.

'living no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맞이 대공원길  (0) 2023.09.13
공기처럼 당연했던 바다  (0) 2023.08.25
의왕 왕송호수 연꽃  (0) 2023.07.08
공원의 봄축제  (0) 2023.04.20
분내  (0) 2023.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