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성삼재-노고단-돼지령-피아골 삼거리-임걸령-노루목-삼도봉-화개재-명선봉-연하천-산 각 고지-형제봉-벽소령-덕평봉-선비샘-칠선봉 영신봉-세석대피소 숙박, 촛대봉-연화봉-장터목-제석봉-통천문-천황봉-백무동.
2016년 5월 30일, 밤 11시 15분, 수원역에서 여수엑스포행 기차로 출발-이튿날 새벽 3시 6분 구례역도착-구례역에서 버스로 구례 버스터미널 거쳐 성삼재까지 가는 버스가 새벽시간에도 대기하고 있다. 3시 50분 출발 4시 20분 성삼재 도착,
두 번째 지리산 종주를 한다. 날을 받아놓고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지만 걱정도 된다. 4년 전 겨울에 종주를 하고 재도전인데 완주할 수 있을지, 체력의 변화가 분명 있을 테니 염려되지 않을 수 없다. 평소에 늘 하는 산행이지만 지리산 종주는 분명 다르다. 지리산 동서의 종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산행거리며 3개의 도와 5개의 군을 거느리는 광활한 산이다. 그리고 1500m 이상 되는 산봉우리도 16개나 되는 지리산의 등뼈를 한 발 한 발 걸어서 45킬로미터를 걷는다는 것은 마치 티끌모아 태산이란 속담과 같은 일이다. 티끌 같은 발자국이 모여서 태산이 되는 천황봉에 오르니 말이다. 진정한 산꾼이라면 누구나 도전하고 싶어 하는 코스이며 스스로의 다큐를 만드는 일이다. 한 편의 지리산 다큐에는 인생 같은 길이 있으며 대자연의 식구들과 그들의 풍상이 있는 산의 생애 속으로 들어가 희로애락을 다 맛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혹독한 세월의 풍상과 그것이 다 지나가고 또다시 사계절이 꽃피는 산과 잠시 일체가 되어보는 것이 곧 내가 지나온 길과 흡시한 행로를 되짚으며 한 편의 다큐를 완성하는 것도 되지만 또한 나의 변화에 대한 점검과 가능성을 시험하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집에 있을 때는 계속해서 미세먼지가 심해서 푸른 하늘을 볼 수가 없었는데 새벽에 성삼재에 서니 이쁜 그믐달이 선명히 보이는 걸 보니 날씨가 무척 좋을 것 같아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들머리에서 핸드폰 플래시로 길을 더듬어 가는 것이 어쩌면 옛날 어머니들이 남몰래 가장 먼저 정화수를 뜨러 가는 길이 이러했겠지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가는 길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플래시를 끄고 걸었다. 조금 걸어 들어가니 길 양편에 피어 있는 돌배꽃 함박꽃(산목련) 하얀 꽃잎이 그믐밤을 밝히며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라도 하듯이 향기까지 곁들여서 피어 있었다. 신선한 밤공기를 마시면서 한참 오르니 성삼재 쉼터가 나오고 거기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걷는데 금방 여명이 밝아오는 가운데 노고단에 이르렀더니 첫새벽 푸른빛에 갑자기 밀려드는 엄청난 빛무리가 노고단 뒤편에서 마치 보가 터져서 넘쳐 드는 물살같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쏟아져 들어서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로 부셨다. 그리고 잠시 후 그 광채에 적응이 되고 사방을 살펴보니 오른쪽으로는 노고단 정상이 시퍼렇게 서 있고 빛이 광열히 밀려들던 그 하늘에는 운해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운해는 바다에 배를 띄우듯 산봉우리를 띄워놓고 출렁이고 있었는데 그걸 바라보는 내 눈은 노를 젓듯이 구름을 몰아 천황봉으로 오르는 마음으로 꽉 차 버렸다.
하늘은 맑고 푸르며 초록으로 눈부신 오월 마지막 날의 지리산엔 병꽃과 산 배꽃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아래쪽에는 어느새 그 곱던 철쭉은 낙화되어 지리산 바닥을 수놓고 있었다. 검은 정적에서 출발해 푸른 첫새벽을 깨고 드러나는 푸르디푸른 지리산의 색조에 감탄하면서 오르는 길에는 막 깨어나신 어머니의 산인 지리산의 하얀 입김이 만들어낸 노고단 운해, 삼도봉 운해, 천황봉 운해를 보는 동안 그 벅차고 아름다운 환희의 순간은 내 마음에 길이 새겨질 어마어마한 화폭의 진경산수화가 된다.
차에서 밤을 지새우는 동안 꼬박 뜬눈으로 네 시간을 달렸고 새벽부터 12시간을 줄곧 걸어서 오후 4시 반에 세석대피소에 도착했다. 세석에는 마실 물과 씻을 물이 좋아서 식수가 나오는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깨끗이 씻고 저녁을 먹고 나니 피로가 몰려와 숙소에 들어갔지만 진한 커피를 마신 탓인지 잠은 오지 않고 잠자리가 불편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옆에서 잘 자는 사람이 얼마나 부럽던지, 그렇게 이틀을 지새우고도 천황봉을 오르는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은 산의 공기는 분명 도심 하고는 다른 보약 같은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세석에서 다시 새벽길을 오르니 이번에는 하얀 산 배꽃과 생생한 연분홍 철쭉꽃이 길을 밝혀준다. 해 뜨는 시간이 빨라서 5시가 지나면 촛대봉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데 구름이 약하게 끼어서 포기하고 지나쳐서 연화봉 건너에서 불그레한 숨은 해를 보는데도 하늘은 이쁘다. 연화봉을 바라보며 잠시 쉬다 보니 아침이 일시에 밝아져 초록세상이 드러나고 연화봉으로 가는 길이 아직도 싱그럽게 아침이슬 머금은 꽃들이 너무 아름답다. 깊은 숲 속에 좁다란 오솔길을 걷는 동안 신록과 꽃이 얼마나 사람 마을을 행복하게 하는지 긴 여정이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산새는 또 얼마나 많이 노래하는지 내 몸 기관에서 느끼는 오감이 마구 춤을 추고 있다. 마치 꽃가루를 묻힌 벌들의 비상처럼 지천에 피어 있는 꽃향기로 상쾌한 발걸음이 드디어 장터목에 도착했다. 이제는 고지가 눈앞이니 편한 마음으로 누룽지를 끊여서 아침을 먹은 다음 제석봉을 거쳐 죄 없으니 바로 제석천왕의 허락으로 통천문을 통과해서 하늘에 오르는 길, 천황봉에 오른다.
천황봉은 언제 올라도 신령한 기운을 느낀다. 그리고 뭔가 목표를 이룬 성취감으로 충만하다. 1915미터를 올랐다. 그리고 45킬로미터 20시간 넘게 걸었다. 호국의 달 첫날을 천황봉에서 시작하는 의미 있는 행보로 다큐를 마친다. 4년 후의 무사한 지리산 종주, 아직은 도전할만했다는 것이 기쁘다.
검은 노고단
밀려드는 빛무리, 눈이 부셨다.
노고단 운해
노고단 정상, 너무 이른 시간 이어서 아직은 통제 중이다.
삼도봉 운해
형제봉, 기상이 넘치던 소나무가 죽어버렸다. 오호 통제라!!
산목련
멀리서 본 벽소령대피소
천황봉이 보인다.
연화봉
드디어 세석대피소, 여기까지가 12시간 걸렸다.
지친 몸을 뉘어야지.
멀리 보이는 촛대봉
어디서나 잘 보이는 반야봉
천황봉이 눈앞에...
온 산에 돌배꽃이다.
통천문, 이곳에서 천황봉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사슴뿔
천황봉
천황봉에서 보는 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