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떡바위-청석재-칠보산 정상-마당바위-삼거리-살구 나무골-쌍곡 주차장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괴산으로 간다. 마니아들은 어떤 악조건에도 구애받기를 원치 않는다. 자칭 산 마니아인 나도 천둥 번개라는 예보에 낙뢰까지 염려하면서도 그 생각 속에서 뛰쳐나와 행동으로 전환하는 깨나 용감함을 아직은 잃고 싶지 않음이다. 나와 같은 대원들을 한 차 가득 태우고 가는 도중에 언제나 총대장님이 마이크를 잡는다. 대장님의 지당한 말씀 속에는 늘 빠지지 않는 것이 아름다움에 대한 강조다.
아름다움이란 말은 사물이나 행동과 내면까지 그 영역이 무척 넓게 쓰이는 말이고, 감성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에 부딪칠 때 흔히 대명사처럼 쓰이는 어휘인데 그 넉자가 포용하고 있는 뉘앙스가 너무 좋고 그 말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을 때가 많다. 그리고 중년을 넘어서신 대장님의 마음속에 늘 자라 잡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표현이 있어 그분이 아름답게 보인다. 겉이 아름다운 사람에겐 싫증이 날 수도 있지만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에겐 향기가 있어 언제나 그 곁에 모여드는 사람이 있다.
칠보산 산행도 대장님의 말씀의 연장선에서 뭔가 7개의 아름다운 봉우리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연상작용을 일으키면서 달려가는 길이다. 지도를 보면서 길을 파악하기엔 역부족인 나는 늘 따라다니기만 하는데 무심코 앞사람을 따라가다 보니 원하는 코스의 들머리를 놓쳤다. 어느 정도 올라가서 갈림길이 있을 것으로 알았는데 7봉을 거쳐가는 길이 아닌 쉬운 코스로 접어들어 청석재까지 갔다.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올 들어 처음으로 습도가 높은 날씨여서 많이 걷지도 않았는데 모자 속에서 땀방울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손수건이 다 젖었는데 바람도 없으니 마르지도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아서 먼산에는 운무가 피어오르고 칠보산 정상에서 보는 풍경은 수승한 산세는 아니지만 정상은 언제나 푸른 청산에 갇혀있는 나의 순수를 발견하고 때로는 아무 데나 나를 내던져도 다 고이 받아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정상에서 급경사의 계단을 한 발 한 발에 정성을 다해 내려오면 조금 우회해서 이름 모르는 봉우리에 다시 오르고 그곳을 내려오는데 어찌나 가파른지 지난주의 아찔함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7개의 보석 같은 봉우리를 다 거쳐갈 수 없는 코스지만 그 봉우리들 보다는 우리가 지나는 길의 소나무들이 칠보 같았다. 오르면서부터 하산길에까지 적송의 자태가 수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 노송은 나목으로도 지난 청춘의 위상은 이러했노라, 하듯이 뼈대만 남은 소나무와 살아 싱싱한 소나무가 하나같이 아티스트같은 행위예술을 보여주면서 멋지게 칠보의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미끄러운 하산 길에 뿌리를 들어내어 우리의 발을 받쳐주기도 하면서 이타행까지 보여주는 참으로 고마운 솔님이셨다.
비교적 짧은 코스를 다 내려오면 쌍곡계곡에 물소리가 들리고 빨리 선녀가 되고 싶은 여심들의 발걸음을 따라가니 맑은 계곡 골골마다 선녀의 발목이 잠겨 있고 나무꾼이 기웃거리지 못하는 선녀탕엔 선녀들이 물 위에 알록달록 젖은 옷으로 꽃잎처럼 떠있는 모습이 시원스러운데 난 아직 차가움에 적응할 자신이 없어 발목만 잠기는 선녀 체험을 한다. 그렇게 심신을 다 정화하고 나오면 시원스러운 물줄기를 내뿜는 쌍곡폭포를 지나 길 양 켠에 소담하게 피어 있는 개망초 꽃밭에 말끔한 선녀가 다시 꽃 속의 꽃처럼 아름다운 포즈를 취한다.
마지막 지점인 쌍곡휴게소 주차장에 오니까 놀라울 정도로 인파와 그들을 실어 나른 버스들이 쭈욱 늘어서 있었다. 피서철과 휴가철을 맞아서 계곡으로 계곡으로 모여들었나 보다. 그런데 열심히 일하는 젊은 직장인보다는 매일이 휴가인 중, 노년의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자연은 역시 자연으로 돌아갈 사람의 차지인 것 같다. 나 또한 그러하니까.
오늘은 산행이 빨리 끝나서 좋은 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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