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설악산 흘림골

반야화 2015. 6. 24. 14:17

6월, 가장 풋풋한 설악의 청춘, 청춘이 그리운 단풍 같은 사람들이 그 풋풋한 기를 받으러 가는 날이다. 여성들의 명품쇼핑은 그들 대부분의 로망이다. 빚을 내서라도 명품을 몸에 두르고 싶은 철부지가 있다는 걸 가끔 듣기도 하는데 그보다는 무상으로 무한 제공되는 명품 설악의 풍경을 온몸에 휘둘러 보는 건 어떨까? 설악산은 산 중의 산 명품산이다. 명품 산에는 존재하는 모든 게 명품이다. 물, 공기, 바람, 그 모든 건 내가 가는 날 다 내 것이고 다 내 몸에 휘감을 수 있으니 그보다 더 좋은 명품쇼핑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을 바꾸면 명품, 그거 별게 아니다. 그런 명품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가난한가? 그러한 명품에도 옥에 티는 있어서 12 폭포를 거느리는 명폭에조차 가믐이 들어서 갈증을 느꼈지만 그건 가변적이기 때문에 잠시의 갈증을 티로 보는 마음이 곧 티라고 할 수 있다.

 

흘림골을 오르기 위해 한계령을 넘어서니 밤새 서늘히 식었던 산천에 뜨거운 해가 비춰 드니 몸부림치는 초목의 입김들이 마구 피어 올라 멋진 운무가 되어 명품산에 드리웠던 커튼을 열어젖히는 듯한데 한계령 휴게소에는 아직도 어느 여름철의 상처가 잊지 말아 달라고 과유불급이던 물이 할퀸 그림으로 남아 있는데 올해는 깊이 잠겼던 돌부리까지 다 드러나 굶주린 악마의 입 속에서 해갈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했다.

 

작년에는 여름 산행의 힘겨움을 절절히 느꼈는데 흘림골을 오르는 동안은 날씨도 좋고 바람도 따라와 아직은 한여름의 열기는 없고 등산하기에 딱 좋은 날씨여서 등선대까지 편하게 오를 수 있었다. 신선이 승천하는 디딤돌 같은 등선대에 서서 내 몸 한 바뀌만 돌면 만물상이 다 내 몸에 휘감겨 오고 마음은 어느새 신선의 디딤돌을 몰래 딛고 날아오른다. 날 선 등선대에서 원경을 다 둘러보는데 대청은 역시 목 아래까지 다가가지도 않고 수고하지 않는 자에게는 정수리를 다 들어내어 보여주지 않고 가까운 칠 형제 풍경이나  마음껏 보라 한다. 선명한 원경을 먼저 다 둘러보고 발아래 등선대를 보면 작은 솔 씨 하나가 겁 없이 등선대 품에 떨어져 바위 몸을 쩍 가르고 살며시 고개를 내밀어 설악의 비경에 한몫하고 있었다. 작은 솔 씨 하나의 기가 생명 있는 거와 생명 없는 것의 단단함을 깨뜨릴 수도 있는 기의 위력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흘림골의 코스는 긴 능선을 따라 거는 곳은 없고 등선대 높이만큼 가파르게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올라가면서, 내려오면서 유월의 푸르름과 우뚝우뚝 솟은 암봉의 조화가 과히 명품산임을 뽐내는 비경이 많아서 카메라 셔터를 닫을 여가가 없었다. 산에선 항상 앞만 보지 말고 뒤돌아보고 아래위를 잘 살펴야 한다. 상하좌우의 다른 풍경을 하나도 놓이지 않기 위해서 관찰하는 것이 좋다. 흘림골은 그랬어, 비교적 짧은 코스여서 여류 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가파른 계단을 다 내려와서 짙은 산그늘에서 점심을 먹고 즐기는 시간을 벌기 위해 남보다 좀 더 일찍 출발했더니 다른 코스와는 다르게 하산 중에도 풍경이 좋아서 한 걸음 한 걸음이 다 즐거웠다.

 

장마 끝이라면 12 폭포의 곡선이 얼마나 멋질까, 그러나 그 흔적으로만 굽이쳐 흘러내리던 물을 연상하면서 한참을 내려가면 줄기는 말랐지만 고인물이 말갛게 면경처럼 옥색으로 유명세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주전골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의 계곡과는 너무 달라서 거기가 아닌 줄 알았다. 계곡에 물이 참 좋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알아볼 수가 없었다. 넉넉하게 마침표를 찍고 주차장에 다 와서는 족욕장에서 발의 피로를 풀고 차에 올랐더니 차 안도 크게 덥지 않았다.

흘림골, 이 가뭄에도 그토록 푸르러 그 품에 안겼던 내 마음에는 푸른 물이 가득 흘러내리는 요산요수의 풍요로움이 되었다.

 

 

 

 

 

 

 

 

 

 

 

 

 

 

 

 

 

 

 

 

손오공의 상투

 

 

 

 

 

 

 

 

 

 

독주암

오색 석사(성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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