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오대산

반야화 2015. 2. 11. 11:48

코스: 진고개 노인봉 ㅡ 낙영 폭포ㅡ만물상 ㅡ 고룔폭포 ㅡ 금강사 ㅡ십자소

 

새벽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고 집을 나섰다.

"오늘 날씨 좋군"

"바람도 없고, 기온도 적당하고" 새벽하늘까지는 좋았으나 강원도 쪽으로 갈수록 하늘은 조금씩 흐려지더니 목적지인 진고개에 도착해서 차문을 여는 순간 싸아한 맛이 들어오더니 내렸던 사람들이 다시 차 안으로 들어와 옷차림을 새로 준비했다. 얼마나 춥길래 하고 밖으로 내려섰더니, 난 그런 바람 태풍 외에는 처음 맛봤다. 그런데도 선자령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니 도대체 선자령이 어땠길래? 진눈깨비까지 뿌리는 바람이 너무 거세서 이대로 갈 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지만 내친걸음을 거두어 드릴 수도 없고 단단히 몸을 채우고 행진을 하는데 몸이 날릴지경이었다.

 

비틀거림의 자유,ㅡ산이 아니고선 어디서 내가 이렇게 비틀거리는 자유를 부릴 수 있겠는가? 아무도 훙보지 않는 비틀거림이 좋았던 눈길에서 우리 모두는 눈에 취해 비틀거리는 대자유를 누렸다. 나무는 서로 부대끼며 쩡쩡 울 어데고 높은 가지 위에서 노는 바람소리는 한여름 장마에 계곡 할퀴는 물소리 같고 그 바람은  수시로 빈 가지 밑으로 내려와 바닥에 있는 나를 날려버리려 했지만 내 몸의 기운이 바람을 이겼다.

 

힘들게 노인봉에 다 달으니 먼저 올랐던 사람들이 내려오면서 다 한 마디씩 한다. 날아간다고. 노인봉이란 명칭이 갑자기 생각났다. "노인이 그곳에 서면 날아갈 수 있는 곳" 노인 정도는 날리고도 남을 기세로 바람이 휘몰아치고 위태롭게 내려와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고 밑으로 내려가는데 그 길 또한 거센 바람 이상으로 아찔한 곳이다. 이미 있던 길은 바람이 묻었고 앞서 간 발자국에다가 내 발을 밀어 넣을 수밖에 없는데 뒤를 돌아보지 말라던 말이 생각났다. 뒤를 돌아보려면 한 발을 옮겨야 되는데 그럴 수가 없어 앞으로만 가는 1차원의 세계를 걷는 것 같았다. 힘들게 한 고개 넘어서니 그제야 얼어붙은 낙영 폭포가 나오고 여기서부터는 비교적 평탄한 길이 나와서 한 숨 고르고 계속 내려가면 소금강 일대가 펼쳐진다.

 

소금강 일대를 보기 전에는, 산에서 내 마음이 이토록 고요히 일렁거리지 않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오대산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푼 채 왔는데 눈보라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었고 바라볼 수 있는 비경은 형체도 알 수 없으니 오대산에서 뭘 봤냐고 묻는다면 내 몸은 바람에 취약하다는 거 그거 확인만 했다고 말할 수밖에......

 

소금강, 이율곡이 청학동을 탐방하고 나서 청학 산기에 기암괴석과 층암절벽, 폭포, 담소의 계곡이 금강산의 축소판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계곡 끝 지점에 소금강이란 표지석 글씨도 이율곡 선생님의 필체라고 하며 무릉계곡이 명승 제1호로 지정되었다고 하는데 폭포는 다 얼어붙어 알아볼 수 없고 계곡의 흐름이 겨울잠을 자고 있으니 그 아름다운 비경을 느낄 수 없어 너무 아쉬웠다. 그러나 계곡 일대를 꽉 매우고 있는 절벽과 그 위에 독야청청으로 위세 당당한 금강송의 절개는 과히 소금강의 이름값을 하고 있었다. 장차 궁궐의 대들보나 기둥으로 모셔져 갈 것 같은 금강송의 화라지 송침 하나 없는 매끈한 몸매는 때를 기다리며 멋있게 서 있었다.

 

오늘의 교훈은 포기하지 않으면 보상이 따른다라고 하고 싶다. 애초에 포기했더라면 비록 무채색의 단조로움이지만 소금강의 비경을 어떻게 보았겠나 생각하면 투덜거리면서도 끝까지 나아갔던 길에 명승 1호를 알고, 그 길을 걷고, 마음속엔 봄, 가을을 채색하면 그대로 그 연상작용이 일어나고 있으니 나에겐 수고로움에 대한 대가로 충분했다. 언젠가 푸른 숲과 그 숲에 단풍 들어 명승 1호의 품격을 볼 날이 있으리라 믿으며 겨울 또한 좋았다고 추억에 적는다.

 

 

 

 

 

 

 

 

 

 

 

 

 

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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