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첫가을 산행을 억새밭에서 시작한다.
나에게 있어서의 가을이란 언제부터인가 양면성을 띄고 있다. 좋은 계절임에 틀림없는데 한편으론 사색에 빠져서 공허한 시간도 되기도 한다. 한 해의 끝자락은 겨울인데 왜 가을이 더 쓸쓸해지는지.......
겨울은 움츠림 속에 마음까지 동여 메고 엄습해오는 월동준비를 하다 보면 시간의 흐름을 인식도 못한 채 다 가버리니까 별생각 없는데 가을은 언제나 닥칠 때마다 앓는 계절병 같은 것이다. 푸르른 하늘과 스산한 바람이 일면 응어리로 남아 있던 내면까지도 다 드래내어 얽매임 없이 방종하고 자연을 향해 그걸 다 피력하고 싶은 마음이 들끊게 된다. 그럴 때마다 처방약은 바로 자연을 찾아 떠나는 가을여행이고 산 찾아 여행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나무들의 단말마 같은 단풍도 아름다운 꽃이 되고 심미안으로 보면 잎 새들마다 다 소네트가 된다.
말로만 듣던 영남알프스를 한 구간이나마 맛보는 날이다. 배내고개에서 시작해 배내봉, 간월산, 신불산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하는데 마음 같아선 영축산 줄기로 죽 이어서 가고 싶었다. 그러나 "~~ 싶다 싶다"하다 보면 끊어서라도 영남알프스 종주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가져본다. 간월산과 신불산까지 가는 거리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굳이 등산로를 다 밟아가지 않더라도 배내고개까지 차도로 오를 수 있게 도로가 잘 나 있어서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다. 배내봉을 향해 오르는 길은 나무계단으로 오르다가 계단이 끝나는 곳에는 키 큰 철쭉이 숲을 이루고 있어 봄 또한 무척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배내봉에서 내려다보이는 간월재에는 가을맞이 축제가 열리고 있어서 오르고 내리는 동안 억새 물결과 어울리는 풍류를 함께 즐기는 우연히도 아주 좋은 날의 산행을 한 셈이다.
간월제에서 바람결 밑에서 바라보면 하얀 억새꽃들이 잡풀 하나 섞이지 않아 마치 탈색되지 않은 인견을 펼쳐놓은 듯했고 춤추는 억새길 사이사이에 풍경을 즐기는 사람 또한 채색된 그림 같아 억새와 사람 모두가 아름다운 가을 풍경의 요소를 이루어 쳘쳐놓은 화폭에 서 있는 듯했다. 간월산을 내려와서 다시 올라야 하는 신불산까지는 억새군락을 벗어나지만 신불산 정상에서 보이는 영남알프스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원경의 곡선이 눈에 들어온다. 3박 4일은 돼야 완주할 수 있다는 산행을 난 언제나 해볼꺼나!
더 나아가지 못하고 신불산에서 휴양림 쪽으로 하산하니 전전날 비 온 후라 계곡은 또 얼마나 좋던지 곳곳에 폭포를 이루어 쏟아지는 굉음이 한여름 같이 넘치도록 흐르고 있어서 산에서 보는 황금 들판과 그 들판으로 흘러들 물의 순환이 참 풍요롭게 보였다. 가을 정취는 무르익어 노랗게 가을 바탕색이 된 들판이 한몫하는데 그 풍경을 가만히 내려다보면서 드는 생각은 "사람이 저 벼들을 다 까먹을 테니 벼의 입장에서 보면 참새나 사람이나 다를 게 없겠구나"하는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작된 가을 산행 당분간은 단풍 같은 시절이지만 이쁜 꽃으로 다시 피어나는 단풍같이 아름답게 지내리라.
나무화석
간월제에서 축제 전야제가에 모인 인파들.
간월재까지 이어진 차도
신불산을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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