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가을이 떠난자리

반야화 2010. 11. 24. 14:57

가을이 떠나갔네,

잠시 집을 떠나 있는 동안에 가을은 온 산에 구수한 녹차향만 남겨놓고 머물던 자리를 겨울에 넘겨주고 떠났네. 한차례 화려한 향연이 끝나고 관객도 떠난 뒤 뼈대만 남은 무대장치같은 모습 사이로 쓸쓸한 바람만 드나들고 앙상한 나뭇가지를 칭칭 감고 있는 묵은 넝쿨들이 나무들의 숨통을 조이는 것 같아 다 끊어주고 싶은데도 어쩌지 못하고, 저것도 다 저들이 살아가는 방법이겠지 생각하며 내 마음만 돌리고 만다.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가는 방법이 다양한데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내가 뭐라고 나무랄 수는 없는거야 나무를 감아야만 살 수 있는 넝쿨들이나 감기면서도 인자하게 그 품을 내어주는 나무들이나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에 충실한 것인데 왜 바라보는 내마음만 답답한 것인지........

 

집을 나설 때만 해도 곱던 앞산공원 단풍들이 병원에서 2주만에 돌아와 보니 산 정수리가 듬성듬성 하더니 이제는 그것마저 잎들이 떨어지고 벗어던진 가랑잎만 흩날리니 넘지 못할 어느 한 고비에 서 있는 내 마음같이 남루하기만 하구나. 참으로 넘고싶지 않다.단지 숫자일 뿐인데 왜 나에게는 태산보다도 더 높아 보이는지, 그래서 가을이 슬프다. 닥치는 일 보다 준비하는 마음이 더 무겁기 때문에 그러나 다시 새봄이 오면 묵은 넝쿨은 간데없고 새 잎으로 무성할 때 나도 어느새 새로운 숫자에 익숙해져 푸르른 잎새들과 새봄 속에 서 있겠지 그런거지뭐 잊을 건 잊고 버릴 건 버리는게 인생이지.

 

일순간이다. 모든게 일순간만 같다.곱다는 것도, 청춘이란 것도 때가되면 다시 태어나는 자연이야 무슨 서러움이 있을까만한해가 저물어가는 이즘에는 언제나 한 장 남은 달력에 얼룩을 남기게 되는 그런 심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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