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해남 달마산

반야화 2016. 4. 6. 15:35

코스:미황사-달마산-문바위재-작은 금샘-대밭 삼거리-하숙 골재-떡봉-도솔암-마봉리 약수터

 

새봄, 해마다 맞이하는 봄이지만 해마다 새롭고 처음 맞이하는 것 같으니 유일하게 `새`자를 붙여서 새봄이라고 하리라. 그 많은 생명을 품고 있던 대지가 한마디 산고의 아우성도 없이 봄을 낳고 봄은 또 작은 풀씨에서부터 고목에 이르기까지 경이로운 저마다의 일생이 시작되는데  하루하루 새로운 잎사귀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새로운 세포들의 태어남이 된다.

설악에서 한라까지 부단히 도 쫓아다니던 내 발길이 드디어 국토 최남단에까지 이르러 달마산 정상에서 점점이 흩뿌려진 우리나라 지형의 잔뿌리들을 조망하는 감회로 벅차다. 먼저 미황사에 들어서면 동백꽃 송이들이 뚝뚝 떨어져 땅 위에 혈흔을 남겨놓고 서러웁게 지고 있는데 달마산 아래 나붓이 내려앉은 미황사엔 연둣빛으로 새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당일에 달마산까지의 산행거리는 너무 멀어서 마음부터 급한탓인지 그만 미황사 경내를 둘러보지 못한 채 바로 산으로 올라가면서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마음으로 그려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아껴두었다가 정상에서 한눈에 보고 싶어서다. 그동안 많이 오고 싶었던 곳이었기에 기대가 큰데 모처럼 날씨조차 맑고 전 날 비까지 왔으니 풋풋한 향기를 마시면서 오르는 길이 절로 절로 기쁨이 솟는다. 정상은 그리 높지 않지만 오르는 길이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 언제나 초반이 힘든다. 근육이 탈력을 받을쯤 어느새 달마산 정상에 서게 되고 사방을 둘러보는 시선을 어느 한곳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웠다.

 

그동안 섬 산행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다른 곳과는 크게 다른 곳이었다. 높은 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다도해의 풍경이 비슷하다고 느꼈는데 해남에서 보는 풍경은 축소판의 지형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감회도 있지만 어느 한 곳이 아니라 삼면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작은 섬들이 마치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의 지도를 완성한 후에 남은 먹물 한 바가지를 바다에 확 뿌려버린 것 같았다. 그런 가운데 또 농토와 마을들이 그림같이 들어앉아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퍼즐처럼 짜여있는 해남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하루 종일 풍경과는 너무 대조적인 들판의 퇴비 냄새는 옥에 티 정도로 싫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어 속으로 그래, 인분 냄새야말로 "인본"이야 내 속의 것이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내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삶이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별로 싫지도 않았다. 봄이니까 시골에 가면 아주 익숙한 봄 향기라고 할 수도 있으니깐 뭐.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산 능선을 이어가는데 스틱이 오히려 불편을 줄 거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을 맞는다.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지 모를 정도로 능선길이 톱니 같은 견치석으로 빼족빼족 울퉁불퉁 선무당의 작두 춤추듯이 조심조심하며 걷는 길이어서 킬로수에 비해서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곳이다. 그래도 좋았던 것은 보는 것마다 꽃이어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우뚝우뚝 솟은 바위들도 하얀색이어서 산벚꽃이 핀듯하고 사이사이에 있어야 할 자리에 피어 있는 진달래는 피었다기보다는 마치 인위적으로 바위와 잘 어울리게 적재적소에 꽃아 둔 것처럼 너무 아름다웠다. 꽃을 어디쯤에 피워야 하는지를 달마산 산신님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꽃 속에서 꽃을 즐기는 사람들마저 나비가 꽃을 대하는 듯 하니 이 어찌 절경이 아니랴!

 

산이 좋다 해도 어느 부분 부분들이지 이토록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가 하나같이 절경을 이루는 산은 드물 것이다. 걷는 내내 저절로 미소가 나오고 시심이 분출되지만 그대로 다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내재된 재능이 부족한 나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 아름답고 힘든 능선을 이어가는 것이 달마산에 전설적으로 머물렀다는 달마대사의 면벽 구 년과 도를 향한 구도의 길이 이렇게 힘든 과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예상보다 더 지체되는 길이 끝나는 능선 끝에는 도솔암이 달마산의 한 송이 꽃처럼 절벽에 꽂인 채 그림같이 달마산의 그림을 완성시키고 있었다. 꽃 속에 푹 빠졌다가 내려왔는데 하산해서 뒤돌아보니 봉긋한 산세 전체가 하얀 벚꽃이 핀듯했다. 행복한 하루였어. 매일이 오늘만 같아라.

 

 

 

 

 

 

 

 

 

 

 

 

 

 

 

 

 

 

 

 

큰 개별꽃

산자고

 

 

 

 

 

 

 

 

 

 

 

 

 

 

 

 

 

 

 

 

 

 

 

 

 

 

양지꽃

 

현호색

 

 

 

 

노란 각시붓꽃

 

 

 

 

 

 

 

 

 

 

 

 

 

 

 

장딸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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