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삼천사 계곡
어느새 여름의 한가운데인 삼복더위에 들어섰다. 아침엔 처음으로 매미소리도 들었고 장마도 왔고 여름에 올 손님들은 다 모인 것 같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여름을 즐기게 되는 휴가철이구나. 나에겐 별 의미가 없지만 괜히 마음이 들뜬다. 피서라면 오늘도 가장 더웠다는 열기를 산속 계곡에서 한기를 느낄 정도로 잠겨 있었으니 남 부러울 게 없었다.
자연 속을 관통하는 대동맥의 흰 피 같은 우렁찬 계곡의 물줄기를 양 옆에 끼고 대청마루 같은 반석에 누워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을 쳐다보며 세상 잡음 다 쓸려가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마치 이 몸도 자연의 한 조각 세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놓고 즐거워하기에는 수해를 입어 힘든 처지에 있을 다른 사람들 생각이 나서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서울에도 비가 많이 와 산에도 길이 깎여서 다른 때 보다 불편했지만 계곡의 물은 맑고 푸른 옥색 빛이고 그 속에 모래알은 살아 움직이는 수정처럼 돌돌 구르고 있었다. 오를 때는 스멀스멀 흘러내리는 땀줄기가 비너스 계곡을 채웠고 숨이 막히기도 했지만 차가운 물속에 발 한 번 담그고 나면 발끝에 차츰 전해오는 냉기로 오싹함마저 들기도 한다. 오늘은 처음으로 계곡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것 같아 갔던 길로 돌아오는데 꽃 한 송이도 만나지 못하다가 마지막에 모기 소굴에서 어여쁜 칡꽃을 담아 오는 대신에 내 살점 세 개를 똑 띠어주고 오는 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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