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커피와 일상

반야화 2012. 3. 30. 14:46

무한대로 주어진 시간을 제한적으로 끊어 쓰는 것이 하루다. 오늘도 하루라는 시간을 열고 내 딸이 집안 가득 향기를 뿌려 놓고 말쑥한 차림으로 문을 나서면 나는 그 풋풋한 향기를 쌉싸무레한커피 향으로 밀어내 버린다. 그것이 내 일상의 시작이니까. 진정한 커피의 맛을 느끼려면 혼자 즐길 때 그 절정의 맛을 안다. 따끈한 물이 커피 속에서 방울방울 여과지를 통과하는 동안 나와 커피 사이엔 서로의 깊이를 가늠하는 침묵만이 맛에 도달하는 기다림이 되기도 하고 그 뒤에 있을 일과들의 순서를 정하며 아무런 할 일이 없어도 그것조차 얼마나 감사한지를 알게 된다.

 

같은 커피일지라도 연인들 사이에 놓인 커피는 그날의 대화에 따라 달콤하기도 하고 맹물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싸늘하게 식어 버림받기도 한다. 또한 원탁의 수다 속에 놓인 커피는 맛은커녕 목을 축이는 도구쯤으로 냉대를 받는다. 몸이 수고로울 때는 달짝지근한 인스턴트를, 외로움에 젖을 때는 쌉싸름한 아메리카노를, 눈이라도 펑펑 날리는 날엔 향긋한 헤이즐넛을 마시자. 그럭저럭 하루의 문을 닫을 때 즘이면 풋풋한 향기를 날리고 가볍게 출근하던 딸이 시들은 배추가 되어 돌아오고 검은 정적으로 몸을 뉘이며 하루를 닫는다. 매일 혼자서 커피를 마시는 외로운 나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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