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사계

제주올레의 완주 스토리

반야화 2015. 9. 30. 12:43

먼저 글쓰기에 앞서 나의 지난 세월을 회상해본다.

20대의 직장생활과 결혼을 하면서 아내, 며느리 엄마로서의 내 본분을 다 해내면서 바깥에 눈 돌릴 시간적 여유는 생각도 못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크면서 한 단계씩 거쳐야 하는 세상을 향한 성장의 단계를 거치는 동안 그 뒷바라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또한 만만찮은 엄마의 역할이 있었다 꼭 무엇이 되도록 직접적인 참여가 아닐지라도 신경 쓰이는 일들이 좀 많은가? 학교 성적, 진학, 취업, 결혼, 이 모든 과정들 속에서 난 아내라는 이름에 걸맞은 진짜 안에서만 산 것 같았다. 중, 후반에 들어서야 엄마의 휴가가 시작되는 때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주어진 주부의 정년 같은 많은 시간들이 나에게 주어졌고 그 시간들을 어떻게 하면 효률적으로 쓸 수 있을까를 한참이나 생각해도 마땅한 게 없어 결국 내가 좋아하는 자연을 찾아 나서는 것이었다.

 

이제는 나만을 위해서 살아도 되는 시간과 여유가 주어졌으니 내가 가장 하고 싶고 좋아하는 자연을 즐기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명산을 찾아다니며 간간히 남편과 함께 하던 산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그 즐거움에 푹 빠져 살면서 흘러버린 세월이 아깝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처럼 이 늦은 나이에 무모한 도전을 했다 바로 제주올레 완주라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그 목표를 세운 이유는 마침 작은 딸의 회사가 제주로 본사를 이주하면서 시작되었고 그 후 3년이 지나자 갑자기 그 딸이 서울로 근무 발령이 나면서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계속 제주생활이 이어질 줄 알고 느긋하게 한 두 달에 한 번씩 내려가면 올레길 몇 개씩을 걸었는데 제주의 퇴거를 앞둔 시점에서 10개의 올레길이 남아서 할 수 없이 엄마를 위해 제주에 있는 집을 그냥 비워놓고 딸은 먼저 서울에서 근무하는 동안 혼자 또는 친구와 함께 내려가서 남은 열개의 올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난여름 그 뜨겁던 하늘 아래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를 고스란히 온몸에 받아들이면서 참으로 고행 같은 길을 걸었다 그리고 드디어 2013년 12월에 21코스를 시작해서 2015년 9월 16일 19코스를 끝으로 완주를 했다.

 

제주올레 총 26개 코스, 그중에 본 코스 21개, 알파코스 5개, 총길이 425길로 미터의 길을 걸었다. 그 길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고속도로 길이인 428킬로에 해당하는 길이다. 물론 단번에 한건 아니지만 한 지역의 길을 그만큼 걷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나에겐 늦은 나이에 시작한 무모한 도전이지만 완주라는 목표 달성이 대단한 성과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 끝내고 나니까 자신이 대견하고 흐뭇한 성취감에 너무 만족한 행복감에 젖어있다. 처음에는 체계적인 정보가 잘 기록되어 있는 제주올레 사이트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냥 검색하고 그걸 메모해서 다니면서 걸었다. 때로는 정보만 믿었다가 허술한 정보 때문에 길을 잘 못 들어 고생한 일도 더러 있었다. 혼자서 한겨울에 21코스를 시작했고 그다음부터는

차례 되로 하겠다던 생각에서 벗어나 길이 아름답고 짧은 코스를 골라잡아 걸었다. 두 번째로 걸었던 코스가 유홍준 씨가 가장 아름답다고 추천한 10코스를 걸었다. 그런데 요즘 10코스가 휴식년제를 맞아 1년간 통제를 하고 있어서 일찌감치 걸었던 것이 참 잘 한일인 것 같다. 그다음엔 18-1코스인 추자도를 미리 걸을 수 있는 기회를 맞아서 지난겨울에 친구와 함께 걸었던 것이 급하게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참 다행한 일이 되었다. 그렇게 골라 걷다 보니 가장 긴 4코스가 남았는데 하필이면 그걸 한여름 혹서기에 걸어야 했던 것이 가장 힘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 하면 우선 아름다운 섬, 관광지 그 정도로 떠오르는 곳이었다가 2007년 7월 2일에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에 등재되고 2008년 5월에 올레길이 개통되면서 길을 테마로 하는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제주가 각광을 받으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 유명세에 편승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계절을 올레길에서 보내면서 기억에 남는 풍경이 참 많다.

 

봄에는 10-1코스인 가파도의 보리밭과 10코스를 걸으면서 제주의 특징인 노랗고 분홍꽃인 유채를 배경으로 산방산을 찍었을 때가 생각나고, 여름에는 지난 2015년, 73년 만에 최고로 더웠다는 삼복더위에 걸으면서 온 몸이 땀의 폭포였던 것과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인 하모리, 표선, 성세기, 중문색달해변 등 해수욕장을 즐기는 바다 풍경, 가을 풍경은 9월이어서 무르익은 가을 정취를 느끼지는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푸르른 하늘 아래 완주의 꿈을 이루었던 것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겨울에는 처음으로 올레에 도전했던 21코스에서 바람과 싸우던 일, 바람을 안고 걸으면서 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저항했던 혼자의 외로운 싸움 같은 경험이 또 있었다. 그 외에도 습도가 높은 날 바닷가를 걸으면 축축하게 젖어드는 끈적끈적한 소금 바람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기억들이 후일 하나씩 꺼내볼 수 있도록 내 정신적 부엌에 맛있게 잠재되어 있어서 난 드러나지 않는 부자가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난 회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들이 빼곡히 쌓여 간직된 부자다. 마지막으로 길 위에서 만나고 기약 없이 헤어졌던 숫한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 아직도 연락을 취하는 길 위의 친구들이 있다는 것도 참 재미있고 소중한 기억들이다.

 

올레길에서 얻은 것과 느낀 점은 비록 단시간은 아니었지만 제주가 생각날 때마다, 제주의 향기가 그리울 때마다 달려가 아름다운 길 위에서 희로애락을 풀어놓고 들여다보는 나의 재발견이 있었으며 평소에는 잘 돌아보지 않던 발을 자주 들여다 보고 발 간수에 애를 쓰면서 일회용 밴드를 몇 통이나 썼던 발의 소중함도 알게 되고 새파란 청춘도 이 니면서 용감하게 도전해 완주를 해냈던 나 자신의 대견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어서 좋았고. 그리고 올레길을 걷지 않았다면 제주의 구석구석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아름다움이 있는지를 전혀 몰랐을 텐데 제주와 서귀포를 다 돌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나 숨은 비경까지 다 볼 수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올레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리본, 그 위력이 또한 대단했었지, 이쪽으로 가도 될까? 싶어도 리본이 가라면 가야 했던 그 말 없는 압력, 그리고 고마움 생각해보면 어디가 끝인 줄도 모른 채 나뭇가지에 매달려 나풀거리는 리본의 춤사위가 결국에는 나를 완주의 춤으로 이끌어낸 것이어서 참 고맙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춤으로 좋은 추억을 만들 것을 믿는다.

 

**그동안 함께 해주었던 제주 아카 자봉 봉사자님들과 친구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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