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날의 광명이 지난해의 때를 다 걷어낸 듯
유난히 맑고 밝고 따사롭다.
더구나 미지근하지도 않아서 매섭게 몰아낸
묵은해의 찌꺼기를 음지에도 남기지 않고서,
갑오년의 새봄이 오려나보다.
입춘이 봄이라는 뜻은 아닐 게다.
아마도 대지의 모정이 땅 속 뭇 생명들에게
젖을 먹이고 나면 그 포만감으로 어린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눈을 뜨는 시기일 거다.
입춘이란 말만 들어도 꽃이 연상되지만
그 님은 아무리 목말라도 대지의 품에서
억지로 알묘 조장할 수는 없다. 때를 기다리자.
입춘이 되면 이 늙은 호기심이 발동을 한다.
세상의 소음이 없는 곳에서 청진기를 나무와
땅에 대고 봄의 소리를 듣고 싶어 진다.
어릴 때 엄마 따라 보리밭에 가면 종종거리면서
전봇대에 귀를 대면 윙윙 소리가 마냥 신기했듯이
나무와 땅 속에서도 생명이 솟구치는
그런 흐름의 소리가 나지 않을까 싶다.
산길을 가다 보면 나쁜 호기심도 있어
누군가 어린 가지를 꺾어 생사를 확인한다.
뚝뚝 꺾어진 실가지에서 초록 피가 흐른다.
길가에선 꽃도 피지 마라 모진 손에 꺾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