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도우 베야 짓에서는 숙박을 하지 않고 밤에 버스를 타고 12시간을 달려 이튼 날 새벽 1시 30분에 동남부 내륙에 위치한 말 라타 야에 도착했다. 첫새벽에 차에서 내려서니 하늘에는 만월이 휘영청 밝은데 또 어느 처마 밑으로 스며드나 예약도 하지 않고 다니다 보니 막막할 때가 있다. 도시가 잠든 조용한 어둠 속에서 돌돌돌 짐을 끄는 소리를 내면서 몇 곳을 거쳐 적당한 호텔에 숙소를 정한 다음 씻고 휴식을 취한 다음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었다. 말 라타 야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넴룻산이 있다. 이곳은 자유여행이 아니면 갈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코스다.
낮 12시 30분에 넴룻산으로 가는 돌무쉬를 우리 돈 30만 원으로 투어를 예약하고 갔는데 왕복 10시간이 걸리는 코스여서 하루에 이 코스밖에는 할 수 없는 곳이다. 약 10시간 신의 품으로 가는 여정은 멀고도 멀다. 그러나 가는 도중에 만나는 겹겹이 쌓인 그 깊은 곳에도 드문드문 사람이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는 모양을 볼 수 있었다. 섬 보다도 더 외로워 보이는 곳에 어떻게 살고 바깥세상과 소통하는지 알 수 없는 적막강산이다. 3시간을 달릴 때 까지는 동부와 비슷한 불모의 황량한 산이 마치 지옥으로 들어가는 곳 같았는데 좀 더 깊숙이 들어가자 천당 같은 곳이 나왔다. 전혀 다른 곳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보면 같은 길로 왔지만 기후는 많이 다른 곳이었는지 온통 초록색이고 꽃도 피고 파아란 융단 같은 곳에 야생화가 만발해 있다. 위로는 설산이고 아래는 초록색 들판이 평화롭다.
정상까지 가는 도중에는 몇 군데 명소가 나온다. 여기가 끝인가 싶으면 아니고 어디가 목표 지점인지 가도 가도 나오질 않는다. 도중에 만난 곳이 콤마가 네 성채와 안티오코스와 헤라클레스 부조, 로마가 세운 젠 데레 다리가 유명하다. 두 개의 기둥이 서 있는 다리 밑으론 흙물이 흐르고 험한 바위벽에는 예쁜 꽃들이 피어 있어 잠시 차를 세우고 쉬어가는 곳이다. 여기서 다시 차를 타고 2시간 정도 더 들어가면 드디어 눈에 쌓인 넴룻산 정상이 나온다.
넴룻산은 해발고도 2150 미터인데 정상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다. 눈이 수북이 쌓여있는 길을 올 들어 처음으로 뚫려서 갈 수 있다고 운이 좋은 팀이라고 했다. 원추형으로 된 정상은 알고 보니 산이 아니라 콤마게네 왕국의 안티오코스 1세의 무덤이라고 해서 너무 놀라웠다. 안티오코스 1세는 자신의 아버지는 페르시아 왕조, 어머니는 알렉산더 대왕의 혈통이었다는 사실을 무덤에 기록하고 콤마게네의 존속을 주장하였다고 한다. 자신이 신들의 대열에 끼어 영원한 잠에 드는 것을 염원한 것이다. 그러나 로마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시대에 결국 콤마게네를 시리아 주에 병합하였다고 한다. 넴룻산의 무덤은 안티오코스 1세 꿈의 흔적이다. 그 규모는 마치 산만큼이나 크고 자갈돌로 쌓아 올렸는데 어떻게 밑으로 쏟아지지 않고 아직도 높이를 유지하고 있는지 불가사의였다. 무덤 밑에는 신상이 세워져 있고 땅에는 지진으로 인해 떨어진 신상들의 두상이 늘어서 있다.
정상에서 하산하려는데 해는 넘어가고 그 험한 길을 어떻게 돌아나가나 걱정했는데 무사히 산을 다 빠져나오니까 차창으로 달빛이 여기까지 나를 따라왔는지 우리 집 마당에서 보던 그 달이 설산에 눈을 더욱 희게 밝히고 세상에 은파를 뿌리면서 빛을 받지 못하는 낮은 곳에는 검은 산에 민가의 불빛이 작은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참으로 먼 곳을 힘들게 다녀오고 나니 대단한 뭔가를 이루어낸 것만큼이나 뿌듯한 날이다.
로마가 세운 젠 데레 다리
오스만 시대의 성채
안티오코스와 헤라클레스의 부조
밑으로, 지진으로 인해 떨어진 신상들의 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