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의 계획을 세우라는 듯이 끝없는 도화지가 펼쳐져 있었다.
한 해의 시작을 아무도 볼 수 없는 마음의 펜으로 드넓은 백지 위에 서원을 담은 꿈의 씨앗을 뿌리면서 둘레를 걸었다. 꽁꽁 언 호수 위에 덮인 눈이 쉬이 녹지 못해 설원이 되어 있어 보이진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꿈이 빼곡히 적혀 있는 것 같았다. 흠집 하나 없는 호수의 설원은 바라보는 마음까지도 백지가 되어버린 것 같아 지난 시간을 다 지워버리고 새 희망으로 채우고 싶어 졌다. 너무 깨끗했다. 너무 순수했다.
한 해의 대문을 열자마자 밀려든 추위는 중순이 지나도록 이어지고 있다. 겨울이 길지만 설산을 누비며 쫓아다닐 때는 긴 줄도 몰랐다. 이제는 바다를 건너지 않고는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재미로 비틀거리던 산행은 할 수가 없다. 겨울 눈을 그리워하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당연했던 것들이 특별함으로 변해가는 기후를 몸으로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 간밤에 눈이 내렸지만 쌓이지 않는다. 이젠 마을에서 설경을 보는 건 힘들 것 같아 포기하고 날씨 좋으니까 걸어보자 하고 호수로 갔는데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않았던 풍경을 마주하고는 "우연은 행운과 겹치는구나"라는 말이 감탄사로 흘러나왔다.
기흥호수는 원래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57년에 착공해서 1964년에 완공한 저수지였다가 지금은 근처 농지도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목적과는 달리 호수공원으로 더 부합하는 걸로 보인다. 근처를 둘러봐도 야산밖에 없는데 이 물이 어디서 왔을까 궁금했는데 발원지는 기흥구 동백동에 있는 석성산이라고 한다. 수원과 용인 일대는 큰 호수가 참 많은 물의 도시다.
기흥호수는 앞으로 더욱 공원을 아름답게 꾸민다는 신년 계획에 들어 있다 하니 둘레길 벚꽃과 함께 조성된 길의 봄이 얼마나 더 멋진 호수공원이 될지가 무척 기대된다. 전체 둘레는 약 10킬로미터가 되고 세 시간을 걷는 코스로 순환로 정비와 개발이 한창 진행 중에 있다. 한 바뀌 둘레를 돌다 보니 호숫가 수변공원 부지가 넓어서 개발이 완료가 되면 장관을 이룰 것 같았다. 공원이 얼마나 큰지 기흥구 고매동, 공세동, 하갈동 세 개의 동네에 걸쳐져 있다. 아직은 교통의 불편함이 좀 있지만 용인의 큰 개발계획을 보면 점차 편리해질 것 같아 자주 찾게 될 장소로 추가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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