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잃어봐야 그것의 가치를 알게 된다.
언제나 조용하기만 하던 우리 집에 외국에서 손님이 왔다. 다른 나라로 떠난 지 몇 년 만에 만난 아이들은 훌쩍 커서 아기였던 두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어 돌아왔는데 지난 주말 1박 2일은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날이었다. 일상의 평화를 잠시 잃고 나서, 매일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나날들이 아무 의미 없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 평화를 되찾고 나서 그 가치를 느끼는 시간으로 돌아왔다.
나의 일상이라면,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일기를 확인한다. 온도, 습도 바람을 확인하고 좋구나 싶으면 뒷산 공원에 오르거나 탄천으로 달려가서 두 시간 정도를 걷는다. 그 외에는 아침마다 창을 활짝 열고 화단의 꽃들과 눈인사를 한 후 강아지와 산책을 한다. 집에서 대소변을 안 보는 루비 때문에 하루에 두 번씩은 같이 산책을 하면서 배변을 해야 되니까 때론 귀찮기도 하지만 덕분에 나를 밖으로 이끌어내는 시간이 되기도 하니 좋기도 하다.
산책이 끝나면 먼저 조용한 클래식을 배경음악으로 흐르게 하고 샐러드 한 접시와 커피를 내려서 창 가 티테이블로 가서 창 아래 펼쳐진 숲을 보고 새소리를 들으면서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식구들이 함부로 던져놓고 출근한 뒷정리를 말끔하게 정리하고 에어컨을 켜서 강아지를 시원하게 케어를 해야 된다. 이제 온전히 내 시간이 되면 음악을 들으면서 대부분 책 보는 시간으로 보낸다. 그러다가 눈이 피로하면 눈을 감고 조용히 안락의자에 휴식을 취하고 스트레칭도 하고 눈의 피로가 풀리면 다시 책을 본다. 어쩌면 소득도 없는 무의미한 시간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 시간들이다.
그동안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던 일상의 평화가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지를 일깨워준 아이들에게 고마워,라고 해본다. 아이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쿵쿵 뛰어다니고 공으로 천장을 치기도 하고 쿠션을 집어던지고 해서 난 가슴이 두근거려서 자꾸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천장에 달려있는 것들, 실링팬, 촘촘히 박혀 있는 알전구들이 부러지고 깨어질까 봐 조마조마했으며 아래 위층에서 초인종을 누르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여야 했다. 오즉 했으면 손자는 '보면 좋고 가면 더 좋다"라는 명언을 만들어냈을까. 손님이 떠난 후 우리 가족은 나와 똑같이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잠시 쉬고 나서 온통 모래가 버석거리던 집안을 청소하고 일상을 되찾았다. 아무 일도 없는 날이 모든 것이 있는 날일 수도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가장 평화롭고 행복하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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