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6일, 첫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되는 날.
역사적인 날이다. 일 년이 넘도록 전 세계가 겪어내던 코로나19를 종식시키기 위한 백신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접종하는 날이다. 참으로 긴 터널을 두 눈 감고 걸어 나오다가 드디어 약한 동아줄 한 끝을 잡고 따라 나오는 것 같은 날이다. 점점 동아줄의 굵기가 변하고 결국에는 큰 밧줄이 되어 인류 전체를 터널 밖으로 끌어내는 날이 올 것 같은 예감 좋은 날이다. 그동안 잠깐씩 숲길을 걸으면서 인파가 적은 평일과 인원수를 줄여 제한적으로 걸음을 이어 오면서 숲 속에서 잠시라도 마스크를 벗고 긴 호흡을 하고 나면 마치 청량제를 들이켜는 것 같은 공기 맛을 느낄 수 있어 그 재미로 숲길을 걸었다.
오늘은 물길을 따라 걸어본다, 탄천 분당에서 서울 쪽으로 물의 흐름을 따라 걷는데 앞으로 이어질 변화하는 봄의 색상이 조금씩 나타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될 것 같아 마구 설레는 가운데 마음은 이미 봄물이 올랐다.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나무들이 바빠 보인다. 우듬지 촉수들은 빛을 더 받으려 애쓰는 것 같고 뿌리는 더 많은 물을 빨아올려 먼저 봄 무대를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날이 따스해지니 검기만 하던 겨울 눈이 통통하게 부풀고 버들강아지 겨우내 품고 있던 노란 속살을 보여주며 봄바람에 살랑이는데 이쁜 강아지들도 신이 났네.
한강을 찾아가는 하천 고수부지에는 가을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혹한이 차마 아름다웠던 가을 풍경을 침범하지 못해 가을의 잔해 위를 건너뛰었는지 묵은 갈대가 꼿꼿이 서 있고 빛바랜 수풀들이 마치 드라이플라워 같이 곱게 남이 있는 길을 간다. 여정에는 물소리 반 웃음소리 반이 되어 함께 흐르는데, 보이고 느끼는 모든 것이 행복의 요소들이 되어 나의 심신에 잠재적으로 쌓여가는 맛이 좋다. 시간이 그냥 흘러버리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것은 추억으로 남고 또 어떤 부분은 함께 공유하는 시간으로 저장되어 잃어버렸던 소중한 일상들을 찾아 그것이 작지만 얼마나 크게 마음을 휘어잡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소중한 게 다 크기로 말할 수 없다는 가치를 일깨워 주는 날들의 기억을 잃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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