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공간

반월성의 달빛

반야화 2007. 10. 11. 14:30

 

반월성의 가을 달밤

가을이 사색의 계절이어서 일까? 문득 엉켜 붙은 지난 일들을 하나씩 꺼내보고 싶어 진다. 가장 행복해야 할 신혼시절 그러나 그것은 꿈같은 얘기였다. 처음부터 우리의 설계도는 깊은 장롱 속에 접어두어야 했고. 영화 `올가미` 를예로 들면 쉽게 이해가 갈 것 같은 생활이었다.

 

남편이 중학생 때 홀로된 시어머니, 애지중지 키운 아들을 나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을 늘 하시는 것 같았다.  난 그때 직장생활을 하다가 바로 결혼을 해서 살림이란 시험대로 올라야 했지만 아무것도 할 줄을 몰랐고 하루를 온통,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데 반나절, 서툰 솜씨 발휘하는 데 반나절 그렇게 하루씩 지나갔다. 아직도 음식 솜씨는 없지만 그래도 그때 요리책 펼쳐놓고 몇 가지 반찬을 만들어 상에 올려놓고 보면 나에 예술적 창작품 같아서 행복해했지만 남편은 속으로 울면서 먹으면서도 맛있다고 했던 그 시절이 철없는 남편의 배려 덕분에 무사히 신혼시절이 지난 것 같다.

 

시어머니는 내가 일을 못하는 것은 전혀 나무라지 않았지만 주로 남편이 나에게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만 온 신경을 쓰셨고 조금이라도 나에게 잘 해준다 싶으면 어떤 식으로든 트집을 잡아서 서로가 불편해지는 날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 이맘때쯤 가을이었었지. 무엇 때문에 서로 기분이 나빴는지 몰라도 남편이 휑하니 성난 얼굴로 집을 나가버려서 분명 어디서 만취할 것 같은 분위기여서 생각다가 뒤 따라나섰더니 발길이 반월성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오지 말라는 말도, 가지 말라는 말도 없이 묵묵히 반월성 갈대밭으로 들어갔다. 그날따라 달빛이 얼마나 좋던지  "성난 얼굴로 오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먼저 말을 걸고 싶었지만 말을 걸진 못하고 혼자서 달빛에 취해서 어느새 난 흠뻑 달빛 아래 나부끼는 코스모스며 갈대밭 물결에 젖어 버렸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서로 자존심을 세우면서 먼저 말을 걸지 못하고 그 좋은 달밤의 갈대밭에서 즐거운 시간을 갖지 못하고 끝끝내 말 한마디 없이 돌아왔는지......

 

난 아직도 그날 밤 그림같이 아름답던 가을밤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반월성 갈대밭에 달이 뜨면 그때만큼 아름답겠지. 그날 밤 하필이면 연인들의 사랑놀이가 많이 보였는지, 아마 그래서 더욱 그 풍경이 아련하게 그림처럼 남이 있는 것 같다. 세월이 흐르고 이만큼 살고 보니 호랑이 같던 시어머님이 생각난다. 지금은 어느 하늘에 별이 되셨을 어머님, 저 좀 잘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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