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꺼번에 다 충족되면 다음은 없다.
여행은 떠나는 날 보다 날을 받아놓고 기다리는 날이 더 설레기 마련이다. 백담사 가는 길, 무릎까지 푹푹 빠지면서 아름다운 고행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닐 때는 다른 것에서 재빠르게 창발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더 나은 것이 있다.
거듭 말하지만 이만큼 실고도 경험하지 못한 "처음"이라는 것이 무수히 남았다는 것과,또한 그 처음이 끝나는 날이 삶이 끝나는 게 아닐는지, 처음이 더 이상 없을 때까지 생의 여로를 걸을 수 있다면 그것이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생각한다. 1박 2일, 인제 천리길을 처음으로 걷는 날인데 이른 출발시간이 걱정이 되어 용산역 근처 찜질방에서 처음으로 잠을 자기도 하고 6시 55분에 itx로 출발해서 8시 15분에 남춘천역에 도착하고 다시 준비된 버스로 갈아타서 용대리에 도착했다. 지난가을에 용대리에서 백담사 가는 길가에 빨갛게 농익은 마가목 열매가 탐스럽던 그 길을 걸어서 백담사까지 간다. 숱하게 지난 길이지만 그 길을 걷는 것 역시 처음이다. 그 곱던 단풍길을 휘돌아 굽이쳐 가던 길에 하얗게 눈으로 덮였다면 아마도 백용 한 마리가 길게 몸을 뻗치고 산으로 걸쳐져 있을 것 같은 그림이 그려졌는데 아쉽게도 길은 구간구간 얼어붙어서 가는 길을 방해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경험이 있었다.
평소에 셔틀을 타고 지나던 7킬로의 길을 동절기만큼은 수많은 인파를 실어나르던 차도 기사도 긴 휴식에 들어가고 그 길을 오직 도보로 걸을 수 있게 내어주니 이 또한 나로선 해볼 만한 즐거운 경험이다. 아무 생각 없이 달려가던 길을 4개의 다리가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금, 수, 강, 산의 첫자를 따서 이름을 지은 금교, 수교, 강교. 산교였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 거다. 그 네 개의 다리를 건너면 바로 금수강산에 들어가니 아주 적절한 이름의 다리다. 걸으면서 하얗게 얼어있는 계곡을 관찰하면서 가는데 물이 계곡을 채우고 흐를 때는 볼 수 없었던 것도 있었다. 단단하고 하얀 화강암 작은 틈을 깎아 넓히기도 하고 바윗돌을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갂았는지 곱고 매끈한 조각품 같았다. 그리고 하얗게 물길의 영역이 한눈에 보여서 백담계곡의 넓이가 그렇게 길고도 넓다는 것도 알았다.
늘 스쳐 지나던 백담사, 이번엔 경내로 들어가서 템플스테이 경험까지 한다기에 떠나기 전에 생활화두 한 가지를 가슴에 꼭 안고 길을 떠났다. 화두라고 하면 대선사님들이 평생을 참구해도 깨달음을 얻을까 말까 한 것이지만 생활 속에서 "이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하다 보면 문득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을 화두로 삼아볼까 생각하다가 "관계"라는 말로 정했다."행주좌와 어묵동정"이라고 해서 비록 많은 인파가 함께 걷는 소란하기도 한 길이지만 "걷거나, 머물거나, 앉았거나, 누웠거나, 또한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는 순간의 일상 속에서도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 화두를 참구 하는 방법이며 일반 대중들도 그런 방법을 체득한다면 모르던 어떤 것에서 크게 감명을 받을 수가 있다.
관계란 어떤 형태의 것일까,홀로 태어나서 부모형제를 알게 되는 가정에서 출발해서 유치원 같은 작은 사회 속에서 큰 사회로 나아가면서 점점 넓혀나가는 그 과정이 하나의 그물망처럼 다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화엄의 세계에서 근본이 되는 "인다라 망"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 형태는 천상세계의 제석천왕이 하나의 그물코를 들어 올리면 연결된 코마다에 달려 있는 보석에서 수많은 서로를 비추인다는 것이다. 그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인가, 서로에게 비치는 아름다운 관계를 느끼면서 같은 길을 걷는 여정이 홀로 걸을 때보다 더 즐겁고 마음까지 나눌 수 있는 길동무는 평생 필요하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동행이었다.
그리고 불자로서 감사한 마음이 들게했다.템플스테이를 하는데 분명 다른 어떤 종교의 분들도 있을 텐데 아무도 거부감 없이 스님을 따라 절 하는 법을 배울 때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센스만점인 스님께서 불상을 보고 절을 하는 게 아니라 우리들을 마주 보게 하고 절을 하면 건강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먼저 설명하시고 절이 일종의 요가라는 점을 설명한 뒤에 백팔 대 참회문의 글귀에 따라 절을 하니까 가능했던 것 같다. 모두들 너무나 경건한 모습으로 열심히 하는 것을 보니 흐뭇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들고나는 호흡 한 끝에 생사가 달렸는데 평소에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잠시라도 그 소중한 호흡을 의식하게 일깨워주신 스님께도 감사했다. 너무 좋은 경험을 체험했던 소중한 시간이 참 좋았다.
물이 틈을 깎아낸 모습
만해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다.
만해 선생님 흉상
날카로운 눈매가 살아 번뜩이는 섬광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에는 그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정갈하고 맛있는 백담사의 점심공양 감사하게 먹었습니다.
절하는 것은 일종의 요가와 같이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해 준다는 것을 설명하시는 스님
절을하는 순서와 방법을 따라 하는 모습
경청
여기서부터 아이스워킹,
이런 경험도 처음,얼음 위를 아이젠 신고 걷는데 두텁던 얼음이 녹아서
조심조심 걸었다.얼음장 밑으론 맑은 물이 흐르고 얼음장 위에는 동심이 흐른다.
얼음의 결정체가 이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