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다림 끝에 맺힌 하얀 결정체......
겨울꽃을 보지 못해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차에 오랜만에 겨우 땅을 덮을 만큼이지만 눈이 왔다. 어느새 내일이 우수인데 춘설이야 맥없이 스러지니 이마저 녹을세라 마음이 급한 가운데 가까운 용인 석성산으로 갔다. 상고대 한 번 보지 못한 채 겨을은 끝자락의 여운을 드리우고 있고 여운의 끝자락 남녘엔 매화 잎이 열리는 기별이 올라오는 걸 보니 어느새 새봄인가 보다. 올겨울은 어느 해보다 재미없는 시간이다.
석성산은 늘 바라만 보면서 가깝다는 이유로 미루기만 하다가 드디어 그곳에 올라보기로 한다.길은 몇 군데 있지만 용인시청 뒤에서 시작해서 동백 백현마을 향린동산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동네 주변에는 크고 작은 산들이 많이 있는데 석성산은 용인의 진산이며 삼국시대의 유적까지 있는 한남정맥의 한 구간이기도 하다. 산에 오르기 전 우리 동네에서 불 때는 지상에 홀로 우뚝 솟은 봉우리만 보였는데 용인시청 쪽에서 오르다 보니 아주 완만한 산줄기를 길게 드리우고 있었으며 유적으로는 삼국시대 석성도 있고 영동고속도로로 인해 끊어진 건너편에는 할미산과 연결되어 있었던 산줄기가 더 나아가서는 할미산성을 따라가다 보면 법화산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던 산이다. 한동안 끊어졌던 산줄기는 얼마 전에 다시 영동고속도로 위로 석성산과 할미산성을 이어준 성산교가 생겨서 이제는 이어서 갈 수 있는 코스가 되어서 산행하기에 적당한 거리가 되었다.
석성산에 오르던 중에 보면 오른쪽에는 군부대가 있어서 사격시 위험 때문에 능선을 따라 걷던 길은 한참 밑으로 우회로를 만들어서 산책로 같이 편안하게 재정비되어 있고 메주 고개를 넘어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키 큰 리기다소나무들이 빽빽해서 그늘 좋은 산길이다. 완만한 길을 팔부능선까지 이어가다 보면 고찰로 보이는 통화사가 있는데 그 길이 예술이다. 마침 눈이 내려서 돌담과 기와 덮개에 소복이 쌓인 눈이 한눈에 들어오는 곡선이 마치 꿈틀대는 용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산사태의 위험 때문에 돌담을 쌓았다고 하는데 편의뿐만 아니라 예술성까지 더해져서 담장이 통화사로 가는 발걸음을 이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름답고 긴 곡선을 따라 통화사에 이르면 단청을 입지 않아서 더욱 고풍이 느껴지는 고찰이 있고 나뭇가지만 있어서 이름을 알 수 없는 고목이 여러 그루가 있어서 다시 찾고 싶은 마음과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통화사를 지나 정상에 서면 넓직한 쉼터 정자에는 식탁과 벤치가 있어서 점심을 먹고 잠시 사방을 둘러보니 용인 일대가 한눈에 보이는 용인의 중심지였다.
정상에서 회귀하지 않고 영동고속도로 쪽으로 넘어가면 끊어졌던 곳에 성산교로 연결되어 있어서 통로를 건너 할미산성으로 간다. 다리가 놓이기 전에 할미산성에 간 적이 있지만 석성산은 바라만 보고 법화산으로 되돌아갔다. 그 아쉬움이 남아서 다시 찾은 석성산은 보이지 않던 긴 자락을 사방으로 뻗치고 있어서 바라볼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용인의 진산다운 규모였고 일대 주민들에게 편안하게 산책을 즐길 수도 있고 기대어 살 수 있는 넓은 품을 내주고 있었다. 성산교 지나 할미산성에서 바라보는 방향이 가장 멋있는 석성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리 건너서 한참을 오르면 할미산성이 있는데 복원된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며 갔지만 무너진 성은 복원하지 않기로 한 건지 무너진 그대로 있고 외성만 복원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성 안쪽 넓은 부지에는 400칸이나 되는 건축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잔디를 심어두었다.
할미산성은 경기도 기념물 215호로 지정된 석축산성이다.신라의 유적이 이곳에 있는 걸로 보아 삼국시대 신라가 한강유역까지 진출했다는 과정을 보여주는 증거로 추정할 수 있는 유적이라고 한다. 기록에는 고려시대 마고 선녀라는 노파가 하룻밤에 쌓았다는 전설이 있으나 전설일 뿐이지 규모를 보면 불가능할 것 같고 발굴 과정에서 유물이 나와 신라가 한강유역으로 진출하던 시기에 축성된 걸로 추측하고 있다고 한다. 가까운 용인에 유서 깊은 유적도 보고 무너진 돌무더기에서 신라의 파편을 보는 듯해서 천년의 세월을 헤아려 보았다. 할미산성에서 법화산까지 갈 수 있지만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 같아 다음으로 미루고 백현마을로 내려왔다. 녹음이 짙어지는 계절에 다시 한번 찾으리라 생각한다.
2019.2.18 반야화 씀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와서 우리동네를 먼저 산책했다.
바닥이 선명한 새신을 신고...
메주고개에서 올라가는 길
군부대에서 내려오는 계단, 사격의 위험성 때문에 폐쇄되고 지금은 산 아래쪽에 길을 만들었다.
통화사로 가는 길의 초입,담장이 시작되는 곳
통화사로 가는 멋진 곡선의 아름다운 길
통화 사입구에 있는 사당, 사당 안에는 정암 선생 영정, 창건 주지 조정행 스님 영정과 성산의 전설 등 자료가 있었지만 도난당한 상태. 통화사를 불사할 즈음에 심한 가뭄으로 마을 사람들이 석성산에 절을 짓기 시작하여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를 하자 스님께서 몇 월 며칠에 비가 온다는 말씀을 하자 비가 내려 통화사를 불사할 수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짐
정상으로 가는길.
석성산에 남아 있는 석성의 잔해
석성산 정상의 쉼터
동백동의 전경
석성산과 할미산성을 이어놓은 다리, 영동고속도로 위 통로
마성 요금소
성산교 건너편에서 보는 석성산 풍경
외성을 지나 할미산성의 둘레를 돈다.
할미산성 외성
할미산성 가장자리
할미산성에서 보는 석성산이 가장 멋있다.
산성 안에 넓은 공터에 잔디를 조성
산성 석축들의 무너진 돌무더기
백현마을로 하산하는 향린동산에 있는 연리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