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힐링의 시대를 살면서 모두가 삶의 질을 생각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느 날 책을 보다가 한 구절에서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숨이 멋는 듯한 정념에 잠기게 되었다.
황현산 산문집인 `밤이 선생이다`라는 책에서 `마음이 무거워져야 할 의무`라는 대목에서 무거워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말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아픈 역사를 보면서 선조님들이 어떤 댓가를 치르게 되었는지 한 번쯤 생각하고 오늘날의 이 물질풍요와 자유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알아야 된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임진왜란 때 조선인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우리의 도예기술을 전수하면서도 인간다운 대접을 받은 게 아니라 종살이의 신세로 낮에는 움직일 수 없고 밤에만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먼 적국에 끌려가 얼마나 한맺힌 생활을 했으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할 수 없었으니 어느 도공이 그 피맺힌 말을 도자기를 만들면서 찻잔에 한글로 새겨 넣었다고 하는 찻잔인데 일본의 야마구찌 현 하기 지방에서 출토된 것을 후지이 씨가 골동품 상회에서 구입해서 교토박물관에 보관해오다가 우리나라 국립 중앙박물관으로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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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야 즈치/말라 개야 짖지 마라.
밤 살/ 다 도듯가 밤 사람(밤에 다니는 사람)이 모두 도둑인가?
/목지 호 고려/님 목지(인명, 또는 지명인 듯) 호 고려(胡高麗)님이 지슘 겨라 계신 곳에 다녀올 것이다.
그/ 개도 호고려/개로다/ 그 개도 호 고려(胡高麗)의 개로다.
듣고 즘/노라/ 듣고 잠잠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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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현대 우리말에 맞게 풀이한 것은
개야, 짖지 마라. 밤 사람 다 도둑인가?
조묵지 호 고려님이 계신 곳 다녀올세라
그 개도 호고려 개로구나. 듣고 잠잠하노라.
이 글을 더 풀이하면 나는 너희들이 호 고려(오랑캐 고려)라고 부르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도둑은 아니다. 내가 밤길을 밟아야 하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개가 짖지 않자 이 이국의 개도 도공의 심정을 이해했는지, 고려인은 감동을 받아 찻사발에 그 심정을 써넣은 거라고 하니 너무 슬프고 마음이 아파서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그 뒤로는 이 말이 망향가가 되었다고 전한다. 이 찻사발도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 그 설움이 그대로 혼이 되어서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해 출토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귀한 유물을 우리나라에 기증해준 일본인에게 첨으로 감사한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