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 되면 모든 일정에 우선시 되는 날이 사월 초파일의 경주행이다.
올봄은 두 달간이나 바쁘게 보냈다. 터키를 한 달간 다녀와서 몸이 안정되자마자 제주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하루 쉬어서 다시 경주로 가서 6일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뭔가 일상의 리듬이 깨어져 어수선하고 할 일은 많은데 일손이 잡히질 않는다.
올해는 초파일이 늦게 들어서 오월 하순의 날씨는 한여름만큼이나 뜨거웠고 경주에 내려서는 순간 늘 그렇듯 아카시아 향이 먼저 반기는데 올해는 꽃도 지고 법당 앞에 불두화도 축 처져 있고, 봄을 건너뛰어 여름을 맞는 것 같다. 여름은 여름데로 잘 즐기면 길지도 않다. 햇빛이 뜨거웠지만 맑은 날이 좋아 보문호를 돌아 반월성 일대를 걷고 월지에까지 들어가니 어느새 저녁때가 되었다. 이왕이면 조금만 더 월지 둘레를 돌다 보면 야경까지 볼 수 있을 것 같아 한 바뀌 돌고 있으니 석양이 드리운 서쪽의 빛이 연못까지 내려앉아 아름다운 물결이 출렁이고 있었다. 이곳엔 낮에는 사람이 없더니 해가 지자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모여드는 곳이었다.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야경을 드디어 보게 되니 상상이 현실을 낳은 것 같은 착각이 일만큼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을 본다. 마음이 문제지 무엇이든 마음먹고 기다리면 다 때가 오는 것 같다. 잔잔한 수면에 맞붙은 실체와 그림자 그 일체를 보는 순간 탄성이 나왔다. 오랜만에 갔더니 전에 못 보았던 것들이 눈에 띄었다. 반월성에서 꽃밭을 걸어 월지까지 오다 보면 밭 사이에 물이 콸콸 흘러가는 물길이 있고 그 물길이 월지의 유지수로 흘러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 물이 연밭도 지나고 꽃을 키우면서 월지까지 흘러들어 고요히 수면으로 그림자를 안고 밤을 즐기는 듯 보였다.
천 년 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연못이 아직도 그 시대와 같이 연회를 베풀고 관객이 모여들고 하는 걸 보면 물을 다스리던 선현들의 지혜가 현시대의 과학이 미치지 못하는 어떤 초월적인 힘이 엿보였다. 연못 안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세 개나 있고 그 섬에 살고 있는 식물들이 정화 역할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니 요즘 말썽이 되는 청계천의 물 유입 비용을 생각하면 치수의 연구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외부에서 유지수로 유입되는 물길도 자연적으로 돌자갈이 걸러져서 맑은 물만 유입될 수 있도록 몇 단계를 만들어 놓은 걸 보면 큰 유지비 없이도 천년을 지켜온 월지의 존재가 세계적인 유산이 되어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낮의 동궁과 월지(안압지) 그림
월지로 물이 유이되는 과정
초파일날 금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