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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홍성 오서산

반야화 2018. 10. 10. 20:04

가을,그 어원이 어디에서 왔든 내포하고 있는 의미 보다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가을이라는 이미지를 곱게 드러낸다.파란 하늘에선 봄보다도 강한 빛의 실선들이 흘러내려서 억새잎에 닿아 소리없는 선율을 타는 듯한 바람이 인다.이처럼 맑고 이쁜 가을의 하루는 지나온 격정의 여름 한시간보다도 짧다.

 

어린시절의 가을은 뭔가를 거두어들이는 걸 보면서 작은 일손이라도 보탬이 되려고 애썼다면 그 시절이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보니 이제는 가을이라는 것이 이별의 시간으로 더 많이 사려하게 된다.말 한 마디로 돌아서는 그런 이별이 아니라 서운한 마음이 들까봐 모든 생명과의 이별에 아름다운 채색을 입히고 여백 없는 붉은 색채에 현혹되어 이별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하얀 서설로 덮여지는 아름다움을 마련해 주는데,그런 이별을 숱하게 겪어냈지만 그래도 난 가을이 슬프다.

 

산에는 산만 있는 게 아니다.갖가지 생명이 오고가고 가만히 살아만 있으면 꽃을 데려오고 열매를 맺어주고  또한 한살이를 거두어 잠재워주는 그 역할은 바람이 담당한다.그 모든 오고감을 한 곳에서 느끼게 해주는 산,그래서 난 그곳으로 간다.이별 앞에 충혈된 울부짓음 같은 홍엽이 있는가 하면 잠시 꽃인가 했더니 피자마자 백발이 되어버리는 억세게 나쁜 운명도 있다.찬바람 한번 몰아치면 억세꽃잎은 낱낱히 날아가지만 억세가 바람을 탓하랴! 홍엽이 바람을 탓하랴!

 

오서산은 까마귀가 깃들어 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주인인 까마귀는 아름다운 곳에 깃들었다가 사람들한테 둥지를 빼앗겼는지 우는 소리 한 번 들리지 않는다. 산의 형태는 산군으로 이어져 있지도 않고 여러 봉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평지에서 홀로 불쑥 솟은 산이 되어서 산길은 정상까지 계속 오르고 하산은 한 끝에 계속 내리막길이다.그러다 보니 하산길의 계단은 1600개나 된다고 한다.이제는 가을 한복판에 와 있는 것 같은데도 오를 때는 여름같은 땀을 흘렸고 정상에서는 땀이 한기가 될 정도로 바람 끝이 아릿하게 차기도 했다. 정상에 오르자 왼쪽으로는 갓 피어나 동백기름을 바른듯한 윤기나는 백발이 바람을 타고 다른 쪽엔 물들지 않을 수 없다는 듯 푸른 우듬지가 연하게 붉어가는 게 마치 산 정수리에 가르마를 탄 것 처럼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그 모습이 허허로움인지 아름다움인지 무엇에 이끌려 탄성이 나오는지 우리는 일순간에 알 수 없는 탄성이 나왔다.그리고는 그 흐느적거리는 바람의 선율을 그대로 담아내는 순간의 행복에 취해 있었다.

 

산을 내려오니 들판은 마치 거대한 살아있는 창고처럼 없는 게 없다.노란 바탕색이 된 벼와 감,대추,땅꽁,마늘,아직도 새파란 당근 등 풍요로우면서도 모두가 일손을 기다리며 꼿꼿이 서 있거나 달려 있는 오곡백과가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며 거두어 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아서 놀고 있는 내 손이 부끄러웠다. 부끄러움도 잠시,일행은 다시 홍성 대하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가서 해산물을 즐기는 팀은 식당으로 가고 우리는 튀김 한 컵 들고 바다를 산책하며 잠시 서해바다의 신선함을 향기로 느끼며 거닐었는데 그 시간도 참 좋았다.그러나 그건 차에 오르기 전까지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