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의 첫가을 산행이다.
가을은 은빛 햇살을 타고 하늘에서 내린다. 그리고는 그 하늘은 가을의 배경색이 되어주어 난 그 배경에 또한 가을 풍경이 된다. 어떤 고정된 풍경이 아니라 마음껏 가을을 향유하며 여러 장면들을 연출해 내어서 그 가을을 고정시키는 풍경으로 완성된 작품이 된다. 이 얼마나 아름답게 계절을 부릴 줄 아는 멋쟁이인가, 그렇게 자화자찬을 해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난 이 가을이 너무 좋다.
어떤 목적 앞에선 끊임없는 훈련을 요하는 것 같다. 늦여름 빗 속에서 산행을 하고 나서 몇 주만에 산에 오르니 몸에서 삐걱 소리가 난다. 그러나 오랜만에 맑은 하늘을 이고 달려가는 첫출발부터 기분이 좋다. 충북 괴산에서 출발하는 신선봉, 마패봉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메인산이 어딘지를 모르고 오르는데 산세가 예사롭지 않아 "국립공원 수준인데"그렇게 생각하고 한참을 걷다 보니 역시 두 봉우리는 월악산 국립공원 줄기였다.
아직은 늦여름의 여운이 남아 있지만 전형적인 가을 하늘과 맛있는 바람, 소담한 구절초 이쁜 꽃들이 가을의 양념처럼 산행의 맛을 돋운다. 전체적인 능선이 약간 날카로운 칼바위 능선처럼 위태로움도 있어 스릴도 느끼고 주변 풍경이 수려해서 지루하지도 않고 특히 하게도 이 산에는 죽은 소나무의 뼈대조차 죽어도 죽지 않은 어떤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왜냐하면 매끈하게 다듬어진 줄기들이 그냥 지나쳐지지 않을 만큼 작품성을 지니고 있어서 사진의 소제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살아 있는 노송들 또한 키를 키우기보다는 가지를 펼쳐 예술적 가치로 뽐내고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듯이 할미봉 방아다리를 지나 멀리에 우뚝한 신선봉을 바라보고 걸으면서 가까이 다가가면 더 좋은 풍경을 찍을 수 있겠지 하고 그냥 지나쳐서 정작 바라보던 그 자리에 서면 그 빼어난 모습이 느껴지지 않고 내가 선 자리는 전체를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원경이 아름답고, 좋은 건 바라봐야지 가지려 하면 놓칠 수 있다는 이치지. 신선봉을 지나 마패봉을 가다 보면 작은 절벽을 만나는데 그 난코스가 아찔하다. 수영을 못 하면 발이 닿지 않을 때 무서운데 이곳 역시 내려 딛는 자리에 발이 닿지 않아 너무 무서웠다. 무사히 안착하고 나니 다리가 후둘거렸다. 그다음은 어사 박문수가 마패를 걸어두고 쉬어갔다는 마패봉에서 잠시 주변을 조망하고 부봉까지는 온만큼 가야 하는 거리에 있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 아쉬움이 다음과 연결되니까 미련으로 남겨두는 것도 괜찮다.
마패봉에서 하산했는데 생각지도 못 했던 그 유명한 문경새재 3 관문에 이른다. 일부러 가고 싶었던 그곳에 이르고 보니 지나온 산행에서 벗어나 선비정신을 느끼는 체험코스가 된다. 1,2 관문은 볼 수 없었으나 지나는 길에는 정자며 주막터, 성황당, 각종 비석들이 옛길 따라 잘 보존되어 있고 더러는 재현되어 영남의 자제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지났을 그 길을 걷는데 먼저 우리 집안 선조님이신 퇴계 할아버지도 이 길을 걸으셨겠다 싶어 깊은 감회에 젖어본다.. 그리고 낙동강의 발원지를 본다는 것도 특별하고 장원급제를 하고 돌아갈 때도 그 희망을 품고 한양으로 갈 때도 나그네가 목을 축였을 조령 약수까지 마시고 유서 깊은 돌탑에 소원 성취도 빌었으니 오늘의 산행은 나에게는 뭔가가 이루어질 것 같은 예감 좋은 더없이 훌륭한 코스다. 글을 쓰는 지금도 어제 지나온 그 휴양림 숲과 흙냄새가 한동안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 참 행복한 산행으로 기록하며 또 하나의 가을을 추억 속 한 페이지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