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서....
세상은 근심에 싸여도 봄은 오고 꽃은 피더라.
해마다 그 산 그 자리를 찾아 가면 바람골 수북한 낙엽 속에 보송보송 솜다리에 긴 꽃대를 내밀고 해맑게 봄볕을 만나고 있는 노루귀가 피고 나면 뒤이어 여러 봄꽃들이 질서를 지키며 서로 먼지 피려고 다투지 않으면서 피어나는데 세상은 질서를 따르지 못한 채 카오스로 뒤엉켜 괴로워하며 시름시름 앓고 있다.
지구가 살아 있는한 보이지 않아도 충만해 있던 그 흔한 공기를 아무도 더 가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공평하게 나눠 마시던 그것이 필터 속으로 들이키는 호흡은 갈증을 느끼게도 하고 마치 제한이 있어 한 호흡에 평소의 반만 들이켜야 하듯이 숨 가쁘게 헐떡이는 나날이다. 필터 속으로 들이키는 호흡은 갈증을 느끼게 하지만 산속에는 근심 같은 건 모르는 완전 딴 세상 같았다. 모두들 스스로 하얀 재갈을 물고 있던 입을 풀고 언제나처럼 공기를 마음껏 들이키며 아무 일 없는 듯이 봄과 꽃을 보며 산길을 걷는다. 마치 어떤 질곡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 같은 자유를 느낀다. 그러나 허용된 자유를 만끽하고 하산하면 다시 근심만 가득한 세상으로 내 몸을 밀어 넣고 사람을 경계하는 냉혹한 현실에 부대낀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에는 아무런 의미조차 두지 않았다. 이제와 생각하니 특별한 거 하나 없던 하루하루의 일상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그걸 몰랐었다. 요즘 집안에 갇혀 지내다 보니 아무 일 없는 것도 행복이고 순간순간이 다 소중함을 이제야 알게 되니 참 미련한 삶이었다. 친구들과 약속하고 배낭 메고 나가 좋은 길을 걸으면서 꽃도 보고 잎도 보며 수다로 시간을 보내던 순간도, 파란 하늘에 구름 한 점 흘러가는 그 모든 풍경 속에 있던 것도 행복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다.
2019. 한 해의 막바지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들끓고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이 즘을 날을 지면에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