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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설악(대청봉에서)

반야화 2020. 2. 11. 13:40

 

소청 대피소에서 밤을 지새우고 첫새벽 푸른빛이 감도는 6시 반 경에 대청봉으로 오르는데 유명한 대청의 바람이 높은 산봉우리들에 부딪혀 거센 굉음을 내면서 몸을 흔드는 가운데 눈으로 하얀 새벽길을 오른다. 멀리서 보이는 대청 대피소의 불빛이 마치 불이 난 것처럼 보인다. 어둠이 남아 있는 새벽이지만 눈이 하얗고 만월이 빛을 뿌리니 자연조명으로 플래시 없이도 오를 수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올라야 되고 대피소에서는 약 20분이면 대청봉에 오르는데 대청봉 정상 아래서 어느새 불그레한 동쪽의 여명이 깔리는데 추위와 바람과 맞서면서 정상에 오르니 말로 다 할 수 없는 명장면이 나를 압도했다. 한 번도 만족하지 못했던 정상의 풍경을 빠짐없이 다 보여준다 소청 위에는 만월이 덩그렇게 올라앉았더니 조금 더 오르자 봉우리와 멀어진 달과 운무와 설경이 숨 막히게 아름답고 멋졌다. 바다 위에는 해무가 깔려서 지평선 같았고 소청과 대청 사이에는 운무의 장관이 마치 구름산처럼 뭉게뭉게 솟아오르는데 내가 그리던 그림들이 다 거기에 있었다. 깨끗한 일출을 보기 쉽지 않다 하는데 해무 위로 완벽하게 차오르는 붉은빛이 바다를 물들이면서 하루의 시간이 태어나는 산고의 피를 뿌리듯이 정월 열였세가 태어나는 해산을 보고 있노라니 벅찬 감동이 말문을 막아서 아무런 소원도 생각나지 않았다.

 

해는 한 번 떠오르면 금방 둥실둥실 높이 올라서 여느때의 해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뒤돌아 보면 안 된다. 솟아오르던 찰나의 순간만 간직한 채 여전히 순수를 뿌리고 있는 달님을 보면서 하산하는데 손발이 너무 시렸지만 그렇더라도 설악의 매서운 바람 맛을 보지 않으면 겨울을 지나온 것 같지가 않다. 멋진 감동의 순간을 다 담아서 내려오는데 아침 빛은 또 왜 그렇게 찬란한지 그 찬란함 속에 드러나는 설악의 무리들이 또 하루의 만족한 포만감을 안겨준다. 다시 소청 대피소로 와서 누룽지를 삶아 먹고 각자 가져온 음식들을 맛있게 먹고 나서 아주 느리고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면서 미끄러져 내려가는데 봉정암 아래는 어제보다는 벌써 눈이 녹기 시작하는 봄 같은 따스하고 바람도 잔잔한 연 이틀을 맑고 투명한 날씨를 선물로 주는 듯했다. 내려오면서도 며칠 후에 있을 친구의 생일마저 미리 눈 케이크에 초를 꽂고 축하하면서 너무 행복하고 즐겁게 보냈는데 산속에서 벗어나니 꿈을 깨는 듯, 번뇌의 바다에 휩싸이는 듯 올라오는 사람들의 입에는 하얀 마스크가 자물쇠처럼 채워져 있어서 꿈을 깨고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나 지나온 이틀의 설경 잔상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만월이 비추는 새벽길을 조명삼아 대청으로 간다.

소청 대피소

앞에 우뚝 솟은 대청봉과 그 아래 화톳불 같은 대청대피소의 불빛이 아름답다.

뒤돌아 보니 소청에 만월이 내려앉아 쉬고 설악을 감상하고 있다.

달은 조금씩 멀어져 하늘로 오른다.

 

 

 

 

 

 

 

 

 

 

 

 

 

 

 

 

 

 

 

 

 

 

뒤돌아보는 대청봉 정상

 

미끄럼을 타는 즐거움

 

울산바위도 보인다.

 

내려다보는 봉정암

 

누웠던 자리가 선명해서 눈,코 입을 만들었다.

 

 

 

 

얼어붙은 쌍폭포 아래서 생일을 맞은 우리들에게 눈으로 잔을 채우고 자축의 축배를 들고.....

 

 

길을 조금 벗어났더니 바로 미끄러지네.

돌아오면서 차창으로 소양강 상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