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를 다시 보는 날, 두 번을 와도 다녀오고 나면 뭔가 부족하다.
워낙 볼거리가 많고 보물도 많아서 사찰 자체가 보물이며 풍경 또한 보물급이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선암사, 두 번 다 초가을과 늦가을에 갔으니 선암사의 봄은 언제 보고 매화는 또 언제볼꺼나. 기다림은 그리움이고 그리움은 끄달려가는 시간이다. 남으로 남으로 끄달려 가다 보면 선암매의 꽃을 보리라 기다려본다.
선암사는 내게 잊을 수 없는 곳이다.몇 년 전에 선암사 경내를 둘러보지 못하고 절 뒤로 등산로를 따라 송광사까지 이어지는 길을 늦가을에 걸었다. 그때 낙엽 깔린 길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잊을 수 없는 길이고 가장 기억에 남는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은 스님들이 지나다니는 길이어서 구도의 길 같기도 하며 구도의 끝에 지혜의 해안이 열리고 깨달음의 꽃이 필 것 같은 길 끝에 바로 송광사가 있는데 송광사의 가을이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로 형언키 어려워서 난 대웅전 앞마당에 그만 그 모든 마음을 실어서 땅바닥에 오체투지를 했다. 몸으로 표현한 것이다. 나와 같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그 길을 다시 걷고 싶다. 길을 걷는 것은 즐거움과 부로도 다 채울 수 없는 노후대책이니 부지런하면 나의 노후를 내 힘으로 유지할 수 있는 에너지 통장을 가지는 것이다.
몇 개의 태풍이 지난 들판에는 벼들이 많이 쓰러졌는데 허수 씨는 그래도 풍년을 기대하며 춤을 추는 듯하다. 바람은 유령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세상에 그 힘을 당해낼 자가 없다.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는 벼들을 보면서 내 일은 아니지만 분명 우리들의 일이다. 저 벼의 쌀이 우리들의 몸으로 들어올 수 있는데 큰 차 몇 대의 인원이 몇 시간만 팔 걷어붙이면 일으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관광보다는 논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편하게 지나치지 못하고 몹시 마음이 불편했다
걷기 행사장에서 몸을 푸는 운동을 한다.행사장에는 각 지역에서 버스 17대가 모였다고 하니 엄청난 숫자다. 그 많은 인원이 모일 수 있는 잔디광장이 있는 것이 놀라웠다. 순천은 얼른 봐도 사람이 차지하는 부지보다는 자연이 차지하는 부지가 더 넓다는 걸 느꼈다. 찾아오는 사람은 다 받아줄 수 있는 준비된 도시 같았다.
2일째 다시 잔디광장에서 가벼운 체조를 하고 순천만 습지를 둘러싸고 있는 인안 방조제를 지난다.방조제 밑에는 갈대가 꽃을 피우고 둑길에는 억새가 꽃이 피어 서로 부대끼며 서걱대는 바람소리는 가을 노래의 변주곡을 만들어내고 있다. 바람의 가락에 맞추어 걸어가는 발아래는 쑥향이 온몸에 스미는 듯 풋풋한 향기까지 베여들게 하는 길이니 이보다 더 좋을 스는 없다.
화포해변길을 지난다.화포마을을 끼고 있는 해변길은 시멘트길이어서 지친 발의 충격흡수가 안 되어 불편하고 지루할 즘에 작은 어촌마을 밭둑에는 진홍색 상사화 꽃술이 요염하고 노랗게 익어가는 감이 힘겨울 만큼 많이 달려있다.
화포를 지나고 죽전방조제 지점 같은데 갯벌에서 벗어난 바다색이 먼 곳에는 조금씩 푸른색이 짙어지고 있다. 서해보다는 남해 쪽으로 더 가깝다는 것이다. 해변가 마을 평상에는 새우껍질을 빨갛게 말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니 조금 더 가니 그 껍질이 어디서 나온 지를 보여주는 대하구이집이 나온다. 팀이 다 앞서 떠난 뒤 우리만 대하 소금구이를 맛있게 먹긴 했는데 앞팀을 따라간다고 대하 먹은 에너지를 흡수도 못하고 다 소진해버린 것 같았다. 오전 시간에 약 3시간 정도를 걷고 차로 이동해서 순천 아랫장에서 점심을 먹는데 하필이면 시장이 노는 날이어서 메뉴가 걸린 간판으로만 눈요기를 하고 정작 점심은 별미를 다 제외한 잔치 국숫집으로 들어갔더니 모두들 그것이 별미였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선암사 부도군,선암사의 유물은 거의가 보물이다.
선암사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부도 군과 비석 군이 있다. 여러 큰스님들의 비석 중에 한 개가 방향이 다른 게 하나 있는데 상월 대사님의 것이라고 한다. 대사는 일생을 선암사에서 보내다가 입적 당시는 묘향산 보현사에서 입적했다고 하며 그래서 비석이 보현사를 향하고 있다는 설과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을 보고 있다는 설이 전해진다. 모든 인연 줄을 끊었지만 마음 바탕에까지 끊어내지 못한 애달픔이 전해지는 듯하다. 수구초심, 낙 엽귀근이라고 하는 뜻이 보이는 유물이다.
유명한 풍경이다.강선루를 품고 있는 승선교다. 보물 400호이며 홍예 중간에 보면 뾰족하게 나온 게 있는데 용머리 장식이다. 선암사의 상징과도 같은 승선교와 강선루의 조합이 어쩌면 저렇게 묘한 아름다움이 있는지 배치가 예술이다. 강선루는 제법 떨어져 있고 위치도 직선상이 아닌데 다리 아래에서 보면 완전 정 중앙에 있다. 물이 잔잔하면 반영이 되어 하나의 보름달 같은 모습을 하기 때문에 환상적인 배치다.
승선교 아래는 넓은 암반이 있어 더욱 튼튼하게 다리를 지탱해 주는 듯하고 다리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은 이곳까지 오면서 보이던 물줄기 아래 넓은 호수 같은 곳을 다 채우고 다시 흘러 순천의 습지를 만들어낸 이사천 줄기가 된다.난 차를 타고 가는 중에 이사천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살펴봤다.
승선교를 만나 예술의 극치를 만들어내는 강선루다.현판을 보면 신선이 하강해서 놀았다는 뜻으로 생각된다. 선암사는 사천왕이 없는데 절 입구에 있는 사천왕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여기서 보면 전혀 승선교와 직선상의 위치가 아니다. 이 루가 승선교 아래 정 중앙 지점에 있다니 참 묘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녹차꽃
선암사 일주문
죽은 나무를 그대로 두는 것이 이유가 있을텐데 이 모습을 보면 마치 일생을 마감한 고승들의 몸에서 나온 사리처럼 이 절에서 일생을 마감한, 아마도 사찰과 함께 살아온 역사를 보여주는 듯한 나무여서 나무에도 신이 깃들었을 것이고 목숨을 다하고 입적한 사리라고 보인다. 분명 나무의 사리일 거야.
선암사 대웅전과 삼층 석탑, 이 탑도 보물이고 대웅전 안에 있는 탱화도 보물이라고 한다.
선암사에서 유명한 전각인 원통사(관음전), 유래는 선암사를 중창한 호암 선사가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기 위해 백일기도를 드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몸을 아래로 날리려는 순간 어느 여인이 구해서 다시 백일기도를 드리던 자리인 산 위에 있는 배바위에 올려두었다고 전해지며 스님은 그 여인이 바로 관세음보살이었다는 걸 깨닫고 원통전을 지어 관세음보살님을 모셨고 승선교를 놓았다고 한다. 승선교와 원통전, 호암 대사가 이 절의 대표 이미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절 이름이 배선자의 선암사가 된 유래이기도 한데 등산로를 오르다 보면 배바위가 있다.
장경각
토담이 아름다운 전각들
은목서, 향기가 너무 좋다. 경내에 은은한 향기를 뿌리고 있는 나무다. 날마다 부처님께 향공양을 올리는 나무 같다.
선암매, 600여 년으로 추정되는 매화나무를 선암이란 이름을 얻을 자격이 되는 듯한데 매화가 꽃을 피운다면 봄에는 매화향기, 가을에는 은목서 향기, 경내는 사계절 향기로 그윽할 것 같아서 선암사의 봄이 벌써 그리워진다. 매화도 선암사와 역사를 함께 지니고 있네.
응진당
은목서 향기 아래 온종일 있고 싶었다.
진영당, 역대 조사님들의 진영이 묘 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