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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시다.

반야화 2015. 3. 21. 13:13

땅 속에 숨겨두었던 보물들을 다

꺼내 보여주는 봄이 오니까 내 마음에도 무엇이

숨었는지 다 꺼내놓고 싶다.

보이는 것이 다 시가 되는 이 봄이 너무 좋아 이쁜 시를 뒤적이는

마음을 우선 보여야지.

 

와운산방

 

                장석남

 

그 집은 아침이 지천이요

서산 아래 어둠이 지천

솔바람이 지천이다

먼지와 검불이, 돌멩이와 그림자가 지천이다

길이며 마당가론 이른 봄이 수레째 밀렸고

하늘론 빛나며 오가는 것들이 문패를 빛낸다

 

나는 큰 부자가 되기를 원했으므로

그 부잣집에 홀로 산다

쓰고도 쓰고도

남고 남아 밀려내리는 고요엔

어깨마저 시리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김선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 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무제 1

    

     이영도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울여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창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와요

    

    안현미

 

내가 만약 옛사람 되어 한지에 시를 적는다면 오늘 밤 내리는

가을비를 정갈히 받아두었다가 이듬해 황홀하게 국화가 피어나는 밤

해를 묵힌 가을비로 오래오래 먹먹토록 먹을 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리

`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갔다`

하면, 훗날의 그대는 가을비 내리는 밤 국화 옆에서 옛날을 들여다보며

홀로 국화술에 취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