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특별한 기념일
오월은 심신이 바쁘다. 가정마다 다 그럴 것이다.챙겨야 할 날들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바쁘다. 계절이 좋아서 놀기도 바쁘고 남의 일 때문에도 바쁘고 이제는 나를 챙기는 날에 참석하는 것도 또 하나의 바쁜 시간 속에 들어 있다.
참 많은 날들을 입을 막고 살았다. 외출할 때 자연적으로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은 필수품이라기보다는 마치 몸의 일부처럼 붙어 다녔다. 그러다가 한 가지 더 늘어서 마스크도 이제는 핸드폰과 붙어 있는 물건처럼 언제나 내 입에 붙어 있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어언 3년이 지나고 며칠 전에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지침이 내렸다.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이냐, 오월의 그 많던 어떤 기념일보다 더 특별한 기념일의 맨 앞자리에 두어도 될 만큼 나에게는 중요한 날이다.
특별한 기념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푸르른 숲으로 갔다. 가서 마음껏 호흡하는 걸로 기념으로 삼았는데 그 어느 때 보다도 들숨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초록 물방울의 액체처럼 꿀떡꿀떡 마시다가 좋은 와인을 음미하듯이 입 안에서 공기를 굴리기도 했다. 마스크 터널에서 탈출하는 기념 걷기라는 것은 남의 눈치를 보면서 그것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지 않고 떳떳하게 맨얼굴로 산길을 활보한다는 것이다. 가장 싱그러운 오월까지 잃어버릴 뻔했던 걸 생각하면 되찾은 오월은 굶주렸던 질 좋은 산소를 마음껏 호흡해도 좋다는 행복을 찾아준 것이다.
한동안 높이 오르는 산행을 끊었었다. 마스크를 쓰고는 산을 오르기 힘들어서 갈 수 없으니 차라리 산의 고도를 낮추어버렸다. 산을 깎아내릴 수 없으니 눈높이로 고도를 낮추었다. 한동안 500미터를 넘지 않는 야산을 트레킹 하면서 근교산을 두루 섭렵을 해냈다. 그렇게 3년을 다녔더니 이제는 처음 가는 곳이 드물 정도가 되었다.
기념하는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밤에는 어버이날 선물이라며 딸이 주는 공연을 보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숨만 돌리고 다시 나가서 딸을 만나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들어섰더니 사람들이 코로나 같은 건 잊은지 오래돼 보였다.콘서트홀은 삼층까지 사람들로 꽉 차 있고 나도 그 속에서 그동안의 걱정을 털어내고 세계가 사랑하는 프리마돈나 소프라노 조수미의 공연을 본다는 것은 내게 가장 큰 선물이었다. 조수미의 공연까지 마치 우리들의 기념일에 덧붙이는 행사처럼 되어 이날은 더없이 멋진 오월의 하루였다.
이번 공연은 팬데믹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복귀를 축하하는 의미를 담은 공연이라는 의미를 담아서 빈 필하모닉 연주자로 구성된 필하모닉 앙상블과 함께하는 무대다. 그동안 음악으로만 듣던 곡들을 유명 연주자 앞에서 직접 보고 깊은 울림을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했던지......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13인의 단원들과 함께 비엔나의 흥겨움을 담은 왈츠와 폴카로 구성되어서 익숙한 선율에 몸을 흔들면서 멋진 봄밤을 보냈다. 가끔 티브이에서 보던 조수미와 공연하는 조수미는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 음막 성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의상이며 얼굴이며 자태가 예술 그 자체였다.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도 한동안 목소리의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쉴 틈 없이 밤늦게까지 놀았더니 이튿날은 많이 피곤해서 이틀을 쉬고 여행으로 석 달을 집을 비워놓은 작은 딸 집에서 글을 쓰면서 혼자만의 시간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다. 오월은 그냥 흘러가게 둘 수 없으니 내일은 어디로든 또 나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