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체류 2주차
피렌체에 체류기간이 어느새 보름이 다 됐다."인생은 여행이다"라는 걸 실천하고 있는 작은딸 부부와 함께 여행을 하는데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도 없고 해주는 거 잘 먹고 잘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는 너무 편한 여행을 하고 있다. 길게 잡은 여행이어서 볼 거 다 보면서 육백 년 된 집에서 현지인들처럼 매일 장을 봐서 직접 음식도 만들고 가끔은 맛있는 외식도 하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다.
이 집이 육백 년 전에 지어졌다니, 내가 이 세상에 올지 알 수도 없었던 그 역사 속의 집에 살아보는 것도 큰 경험이다. 물론 실내는 많이 고쳐서 편리를 더했지만 천장에 노출된 대들보는 그 까마득한 시간을 알 수 있게 노출시켜 두었다. 집의 형태는 4층으로 된 아파트 같지만 철근 같은 게 들어간 건축이 아니라 오직 돌로 기둥을 쌓아서 벽돌로 벽을 채운 것 같다. 건물 중간에 복도로 된 계단이 있고 양쪽으로 세대가 배치되어 있어 통풍이 어렵고 대체로 어둡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이 광장을 좋아하고 음식점도 야외테이블에서 먹는 걸 좋아한다는 걸 느꼈다.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일단 도시 산책을 하고 아점을 먹고 나면 날씨에 따라 할 일을 정한다. 멀리 갈지, 실내에서 볼거리를 찾을지, 아니면 도서관을 갈지를 정하는데 어제는 날씨가 좋아서 아르노강 동쪽을 걸어보기로 하고 피렌체 베키오다리를 중심으로 아르노강 동 서 양쪽을 12킬로 정도를 트레킹 했다. 며칠 전에 아르노강 서쪽 수변공원 약 12킬로를 걷고 오늘은 동쪽을 12킬로 정도 걸었다. 서쪽을 먼저 트레킹을 하고 나니 동쪽이 궁금한 호기심이 발동해서 결국에는 오늘 버스를 타고 산 자코포 지로네라는 곳에서 내려서 피렌체 시내 쪽으로 걸어 들어오는 방법으로 집까지 걸어오는 길인데 약 4시간 정도 걸었다.
구름이 끼어도 해가 나도 시야가 투명하니 어디를 가든 좋다. 강을 따라 걷는데 눈앞을 가리는 어떤 것도 없고 보이는 건 익어가는 밀사초 군락과 노랗고 새파란 바탕에 수를 놓듯 붉은 꽃양귀비와 보라색 당아욱꽃이 무더기로 섞여 있는 풀밭이 너무 아름답고 멀리까지 잘 보이는 시선이 머무는 모든 곳이 멋진 풍경이다. 우리 역시 그림 같은 풍경 속의 풍경이 되어 행복한 트레킹을 했다. 작은딸 부부도 자연을 좋아하는 팀이라서 서로에게 힘든 걸 억지로 하는 부담됨이 없어 참 좋다. 그런 중에도 엄마를 위한 시간을 특별히 배려해 주려고 애쓰고 있어서 내가 좋다고 하면 어디든 같이 가주는 고마운 딸 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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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산책길에 들러본 곳.
산토 스피리토 성당, 이 성당은 피렌체 두오모를 설게 한 브루넬레스키의 유작이라고 해서 아침산책길에 조용한 시간을 이용해 보고 왔다. 이제까지 보아온 성당과는 외관부터 다르다. 벽체에 많은 조각과 장식들로 화려한 성당들이 거의인데 비해 이 성당은 특별한 장식도, 조각도 없이 벽이 매끈한 대칭이다. 그래서 더 눈길을 끄는 성당인데 안은 또 어떨까 궁금해서 안으로 들어가서 성화들을 다 보고 2유로를 주고 같은 성당 안에 있는 다른 공간에서 미켈란젤로가 18세 때 만들었다는 십자가와 예수상을 봤다. 예수는 옷을 걸치지 않은 모습이고 긴 줄을 늘어뜨린 공중에 매달려 있다. 문을 열고 나가면 ㅁ자 건축물로 된 중앙에 중정이 있는데 중정벽 둘레에는 수많은 죽은 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대리석판들이 있었다. 사람은 가도 예술은 길이길이 남았으니 죽어도 죽은 게아니다. 언제나 기억되고 기록되는 사람으로 남는다는 게 가장 잘 산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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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 스피리토 성당의 중정에 있는 종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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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측면도 창 외엔 어떤 장식도 없이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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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톳물이 강을 가득 메우고 흘러간다. 물이 갑자기 불어 난 황톳물이어서 어딘가에 비가 많이 왔나 보다 하고 걸었는데 집에 와서 뉴스를 보니 이탈리아 북부에 홍수가 났다는 걸 보니 그 영향으로 이곳까지 강물이 많았다는 걸 늦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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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두 시간 넘게 걷었고 멀리 미켈란젤로 광장이 보이는 곳까지 와서 야와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쉬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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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따라 거는 길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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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 너무 많아서 밀인가 싶었는데 노랗게 익어가는 밀사초였다. 꼬두리가 쭉정이인 걸 보니 밀과 흡사한 밀사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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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물길이 확 꺾어져 왼쪽으로 흐르고 우리도 강물이 흐르는 곳으로 따라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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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바로 옆에 있는 아르노강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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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작은 야생화들이 피는 꽃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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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곳이 애견공원이라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에 정작 주인공도 없이 비어 있어 이 마을 첫인상이 너무 좋았다. 피렌체에는 잔디밭에 벌레도 없고 무서운 찐득이도 없다 하니 마음껏 앉아보고 강아지나 어린이들이나 뛰어놀기 너무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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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네 정류장에서 내려서 강쪽마을로 접어든 시작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