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으로 낭만여행
흘러버린 줄만 알았던 세월이 내 안에 고스란히 잠자고 있는 그 순간을 찾아 떠난다.
계절의 변화를 겪으면서 내 안에 잠재된 순간순간을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의 노트가 누구나 한 권쯤 녹슨 가슴마다 간직되어 있겠지만 난 아직도 그 색 바래지 않은 감성이 너무 생생해서 괴로울 때가 다 있다. 그리고 아직도 더 채워 넣을 공간도 가슴 한편에 있다는 것도 감사하고 그 공간을 채우기 위해 잡을 수는 없지만 쫓아다닐 수 있는 여력이 있어 너무 좋다. 그러나 꽃피고, 잎 피고, 단풍지는 그 적기를 다 내 것으로 만들기엔 역부족이어서 마음만 바쁜 가운데 친구들과 낭만의 도시 춘천으로 간다.
70년대, 그 혼란했던 시기에도 낭만은 있어서 무궁화호, 비둘기호 같은 완행열차를 타고 기타 치고 노래 부르던 구 경춘선 구간을 아직도 모든 게 그대로인데 열차는 새길로 이사를 가 이름까지 개명을 해서 itx란 이름으로 고급스럽고 속도는 빠르게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품에 맞게 바귀어버렸다. 다행히 그 길은 그대로 남아 8.5킬로의 철길을 레일바이크로 관광상품을 만들어서 많은 지난날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것에 대해 감사할 따름이다. 총 8.2길로 중에 6킬로는 발로 페달을 밟아가는 바이크 길이고 나머지 2.5킬로는 휴게소에서 낭만열차라고 해서 장난감 기차 같은 오픈카를 바꿔 타고 달린다. 짧은 구간이지만 북한강 강줄기를 따라서 건너편에 있는 가을산의 정취를 함께 느끼면서 가는 길은 몇 개의 터널을 지나 김유정역에서 강촌역까지 간다. 그 터널이 마치 가을을 통과해서 겨울로 들어가는 길처럼 아침 공기는 어느새 겨울만큼 차가웠다.
바이크로 지나는 터널 안은 마치 노래방처럼 꾸며 놓아서 찬란한 불빛이 돌아가고 유행가가 울려퍼지더니 낭만열차가 달려갈 때는 풍경과 열차와 계절에 너무 잘 어울리는 추억의 대표적 샹송인 에디트 피아프의 애절한 곡조와 이브 몽땅의 고엽이 울려 퍼져서 눈물 날 것 같은 낭만 분위기를 고조시켜 주었다. 연무 속에서 답답하던 풍경들이 점점 가을색을 드러낼 때쯤 우리는 다시 남이섬으로 갔다. 소문으로만 듣던 섬을 찾았더니 단풍시기가 늦어서 아쉬웠다. 그런데 너무 유명한 곳에서는 어디를 가나 인파 때문에 실망할 때가 많다. 내가 원하는 풍경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남다른 정성을 들여야 되는데 무작정 갔더니 상상했던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은행잎은 다 떨어져 온전한 게 없이 다 바스러져 가루가 되었고 메 타쉐 카이어의 길은 온전히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원치도 않은 인물들이 아무렇게나 사진 속으로 들어가니 원치 않은 배경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인파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그 화려함 가운데 섬 한편에 쓸쓸하게 모셔진 남이장군의 묘소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더구나 그 묘가 정확한 위치를 모른 체 돌무더기를 묘소로 추정해서 지금의 자리에 봉분을 만들었다니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잠시 묵념을 드렸다. 차라리 유명세를 타지 않았더라면 장군의 묘소는 더 평화롭고 아름다웠을 것 같아서 돈벌이에 팔려서 마구 짓밟히면서도 외면당하는 것 같아서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 안고 돌아왔다. 그러나 가을 한나절 우리의 추억은 그곳에서도 빛났으니 어쩌랴!
김유정역
남이섬 입구
남이장군 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