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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이 피워낸 물봉선

반야화 2021. 9. 3. 20:55

여름의 끝자락에 선뜻 들어섰지만 정착하지 못하는 미약한 초가을의 길을 간다. 이즘에는 딱히 볼 것도 많지 않다. 나무는 성장을 멈추었고 잎은 생기를 잃고 푸른 낙엽이 되어지고, 가을 속에는 늘 내가 이입되곤 한다. 이럴 때 스스로 위로를 찾는 말이 있다. 아침이 좋고 청춘이 좋지만 저녁노을도 아름답고 가을 단풍이 더 화려하다고. 그 단풍을 맞을 날이 멀지 않았다. 붉은 가을의 화려함에 휩싸여 잠시 나를 잊지만 낙엽 지면 공허함을 채울 길 없어진다.

구월은 계절의 교차점에서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오고 가는 것에 대해서, 맞이하고 이별하는 것에 대해서, 사색하는 산길이 끝나갈 즘 아무것도 볼 거 없다고 무심히 지나던 길 가 계곡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꽃이 계곡을 가득 채운 채 물속에 뿌리를 담그고 망중한의 초가을을 즐기는 듯했다. 얼마나 반갑고 이쁘고 즐겁던지 순간 자연이 주는 행복감이 확 밀려옴과 동시에 물속으로 들어가 물봉선처럼 되고 싶어 오래 머물며 아이처럼 놀았다.

흙과 물과 공기는 생명을 위해 무엇이든 다 해줄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아름다운 심성에 빨간 물봉선이 피어났다. 준비된 자연의 품은 얼마나 위대한가. 떠날 때가 된 생명은 거두어 잠재워 주고 태어날 때가 되면 피어나게 하니 순리만큼 아름다운 건 없다. 그러나 그것을 역행할 때가 가장 추해진다. 이렇듯 자연은 겨울이 오기 전까지 끊임없이 뭔가를 피워내고 있다. 내 마음에도 흙 한 줌 고이 들여놓아 늘 뭔가를 키워내고, 피워내고 싶다.

옥잠화
빨간색 물봉선을 마음껏 들여다보고 카메라에 담으면서 흰색도 보고싶네 하면서 물따라 올라갔더니 꿈결처럼 흰 물봉선이 진짜 있었다.순간 이럴수가, 내 말을 듣고 빨간 것이 변신을 한 것 같았다.

물봉선의 매력은 나비의 더듬이처럼 또르르 말고 있는 꼬리다,통통하고 긴 배속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꼬리는 외 말고 있는지 입술은 왜 늘어뜨렸는지 속을 들여다 보고 관찰하면서 재미있게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