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종주 네 번째
2018.6월 6,7일 네 번째 지리산 종주
같은 시기에 같은 길을 네 번이나 종주하면서 또 무엇을 쓸 게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또 쓴다. 속에 든 감정을 다 드러내지 않으면 안에서 자꾸만 출렁거리기 때문이다. 사월부터 유월까지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가 수두룩 하던 걸 거의 다 소화하느라 늘 시간이 바쁘다. 이제 대망의 몽블랑 트레킹을 앞두고 준비하고 미팅하고 집안일까지 편히 쉴 시간 없이 날짜를 보냈다. 이렇게 상반기가 다 지나가고 여름에는 휴식을 취해야겠다.
지리산에 갈 때마다 늘 밤기차로 내려가서 새벽부터 시작하던 산행을 이번에는 달리 해보는 경험을 한다. 수원에서 아침 7시 25분에 출발해서 11시 20분에 구레 역에 도착했다. 성삼재까지는 택시를 이용해서 12시 20분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날씨는 약간 먼지가 끼었고 기온은 적당하지만 낮시간에 오르는 건 처음이라 새벽에 노고단에서 볼 수 있는 섬진강에서 피어오르는 운무의 장관을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움이다. 그러나 노고단을 넘어 숲으로 들어가면 처음으로 시작되는 그 구간이 참 좋다. 지리산은 종주를 하고 천왕봉에 오르는 게 다가 아니라 천왕봉까지 걸어가는 길의 여정을 난 참 좋아한다.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 한 시간 정도 걸어가는 길 섶에는 올해도 함박꽃이 피어서 산으로 들어가는 우리들에게 함박 웃고 있으면 보는 우리도 절로 함박웃음으로 향기를 맡으며 들어서게 되는 인사를 건네게 하는데, 산목련은 그 모습 때문에 함박꽃으로 보이고 그렇게 불리는 이유가 된다. 성삼재에서 여장을 마치고 노고단 아래서 고개를 넘어 들어가면 들머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분홍빛 앵초 꽃을 보는데 늘 그 자리에 지리산의 첫인상을 곱게 심어주는 꽃이다 그리고는 향기가 좋은 하얀 꽃들이 피어 있고 병꽃들도 한몫하면서 짙은 녹음 속으로 들어서면 촉촉한 땅기운과 숲에서 나오는 향과 숲이 주는 싱싱하고 상큼함으로 세러피가 되어서 천왕봉까지 결국에는 오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오늘의 숙소인 연하천을 향해서 간다. 연하천까지 가는 길도 너무 이쁘다. 겨우 한 사람만이 통과할 수 있는 길섶에는 꽃 진 철쭉, 참취, 떡취 단풍취가 사람의 손을 겁내지 않고 넓은 잎을 키우면서 싱싱하게 자라고 철쭉은 이미 떨어진 꽃잎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올해는 꽃피는 시기가 빨라졌나 보다. 걷는 내내 즐거운 마음으로 걷다 보니 6시 30분에 연하천에 도착해서 밝을 때 저녁을 맛있게 먹고 씻지도 못한 채로 대충 물수건으로 닦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수면제까지 먹었는데도 밤새 맑은 정신이 잠들 줄을 모른다.
간밤에 한 숨 못 잤지만 피곤하지도 않다는 게 산속의 미스터리다. 새벽 4시에 벽소령을 향해서 출발한다. 벽소령에서 자면 이튿날 가야 하는 길의 여정이 짧아지겠지만 연하천에서 천왕봉 끼지 올라야 하는 시간이 앞으로 12시간은 족히 걸어야 한다. 새벽에 플래시로 길을 밝히고 가는 그 걸음도 참 좋다. 새들은 벌써 깨어나 지저귀고 보이는 건 발밑뿐이지만 들리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귀가 즐겁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걸으니까 멀리에 장터목이 보이는 전망대 같은 봉우리에 도착했을 때 동쪽이 열리고 여명 속에서 불그레한 빛이 감돌더니 금방 해가 붉게 떠오른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일출이 징관은 아니지만 그래도 운무를 드리우고 떠오르는 아침이 너무 아름다웠다. 이번에는 여기서 운해까지는 아니지만 새벽에 볼 수 있는 운무 가운데 산봉우리를 둥실 띄워둔 운무를 보고 있으니 그제야 지리산에 내가 서 있다는 감흥이 일기 시작한다.
잠시 일출과 운무를 감상하면서 간식도 먹고 다시 벽소령으로 간다. 날이 밝아지는 그제야 나를 둘러싼 날 선 산줄기들이 시퍼렇게 늘어서서 지리산의 진면목을 보여주는데 지리산의 산봉우리들은 아기자기하고 몽글몽글한 곡선이 아니라 장대하면서도 길쭉길쭉한 곡선을 그리면서 이어져 보이는데 산이 높고 골이 깊으니 그 품이 넓어서 어디를 둘러봐도 장대한 산줄기들이다. 그 드넓은 품 안에서 아무리 걸어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작은 한발 한 발이 긴 선으로 이어지면서 벽소령에 도착하니 대피소를 한창 증축 중이어서 공사를 하는데 그 모습이 기대가 된다. 벽소령을 지나서 세석대피소를 향해서 걸어가는 절벽길도 참 좋다. 전보다 다듬어진 길을 걷는데 아찔하게 보이던 아래의 낭떠러지가 보이지 않고 숲에 가려져 있다. 그 길을 걸으면서 멀리까지 훤하게 보이던 전망은 좀 못해진 것 같았다.
벽소령에서 세석까지 가는 길이 좀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몸이 지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174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 구간도 있고 오르내리는 길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연하천에서 새벽 4시에 출발했는데 세석평전에 도착하니 아침 9시 27분이다. 간식을 먹었으니 조금 더 걸어서 선비샘에서 아침을 먹는다. 선비샘에서 씻을 수 있으려나 했는데 많이 가물었는지 물줄기가 겨우 식수할 만큼만 졸졸 나온다. 선비샘에서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는데 아침 냉커피도 꿀맛이다. 세수 대신에 다시 물수건으로 닦고 양치하고 선크림을 바르고 길을 이어간다.
촛대봉을 바라보면서 장터목으로 간다. 세석평전을 거쳐 오르는 길은 편하면서도 오르고 있는 걸 금세 다리가 먼저 안다. 어느 정도 걸어가면 촛대봉이 삼각형으로 전체를 드러내고 있어서 보기 드물게 해마다 인생 2막을 시작한 한가족 남매분들이 지리산 종주를 한다는 게 너무 대단해서 난 그분들에게 촛대봉을 선물을 드리기 위해서 촛대봉을 품 안에 넣을 수 있는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여섯 명의 남매분들이 앞으로도 여전히 함께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라면서 한 연출이 썩 맘에 들지는 않지만 그 착안은 괜찮은 것 같았다. 촛대봉을 안아보고 정상에 올라서 멀리 시퍼렇게 모습을 보여주는 천왕봉 꼭대기로 운무가 오르고 있다. 아마도 우리와 함께 천왕봉을 향해서 오르나 보다.
드디어 장터목에 도착했다. 장터목에서 점심을 먹고 이제 제석봉을 향해 오르는데 지난해 꽃 피우고 죽어버린 산죽이 죽은 목숨을 뉘이지 못하고 흉하게 대만 서걱대고 또다시 죽기 위해 피어 있는 산죽 꽃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어느 누가 죽기 위해 꽃을 피우는가. 산죽의 일생이 안타까워서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걷는 이 여정도 어쩌면 인생 후반의 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 아픈 길을 걸어서 제석봉에 오르면 하얗게 뼈만 남은 주목들의 잔해가 산죽처럼 죽은 몸을 뉘이지 못하고 그대로 서서 어떤 것은 까마귀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산꾼들의 작품이 되기도 한다.
제석봉에 올라 보니 우리와 함께 출발했던 운무는 우리보다 빨리 어느새 천왕봉에 도착해서 천왕봉 정수리를 감돌고 흐릿한 봉우리로 다행히 운무는 비를 몰고 오지는 않아서 우리는 전과 같이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인증을 하고 중산리로 하산을 한다. 지난해는 중산리 길에 철쭉이 남아 있어서 길이 너무 아름다워서 힘든 줄도 모르고 내려왔는데 올해는 오르는 동안은 꽃을 보지 못했고 중산리로 내려가는 첫 길목에 계절의 여왕인 오월의 왕관과도 같은 철쭉이 떨어지다 말고 마치 우리들에게 어떤 단말마라도 남길 듯이 겨우 몇 개의 꽃 이파리를 달고 기다리는 듯해서 초라한 모습이지만 왕관을 벗어야 하는 운명의 순간을 고이 담아왔다.
중산리 길은 마치 오색에서 대청봉을 오르는 설악산 돌계단길과 시간도, 거리도 흡사하다. 짧지만 힘든 구간을 무사히 다 내려와서 감사한 마음으로 여정을 마치고 다시 택시를 타고 산청군 원지동 끼지 가서 저녁을 먹은 후 서울 남부터미널까지 도착하니 밤 9시다. 집까지 돌아와서 씻고 나니 이틀을 빈틈없이 꽉 찬 일정이 되었다. 그리고는 굶은 잠을 달게 잘 것이 확실해서 드러누웠다. 늘 그렇듯이 내년에 다시 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것이 올해도 해냈다는 행복한 자부심 가득하게 마무리한다.
성삼재를 향하여
노고단 대피소
오른쪽에 노고단, 왼쪽에 있는 돌탑
노고단 넘어서 시작되는 종주길 초입
임걸령 가는 길
피아골 삼거리
임걸령 샘
백당나무 꽃
노루목에서 보는 풍경
삼도봉에서 보는 풍경
삼도봉 넘어서 화개재까지 끝없이 내려가는 계단
화개재
숨어있는 노루뿔 같은 모습
토끼봉 가는 길
산목련
노각나무, 저렇게 얇은 피부로 어떻게
벌레들에게 맞서나?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기 위해서일까?
단풍취
연화천 대피소
이튿날 새벽 여명
형제봉
형제봉 넘어서니 일출이 시작된다.
조릿대 꽃
벽소령 대피소
벽소령에서 세석 가는 절벽 위의 새 단장된 길
선비샘
상 하, 벽소령 전망대에서
칠 선 봉
영신봉
세석으로 가는 174의 계단
개별꽃
멀리 보이는 반야봉
영신봉에서 보는 우뚝한 천왕봉
촛대봉을 바라보며 품 안에 넣어본다. 촛대봉을 그대들께 선물합니다.
세석 대피소를 스쳐 촛대봉으로 오르는 길
세석 대피소를 바라본다.
세석평전을 지나 촛대봉으로 오르는 길
촛대봉 정상에서
촛대봉에서 보는 천왕봉
장터목으로 가면서 보는 제석봉
촛대봉을 내려서면 편안한 쉼터 같은 곳
장터목 대피소
장터목 아래로 뻗어내리는 계곡
장터목 대피소의 식수
까마귀 놀이터가 된 주목의 고사목
제석봉에서 보는 뾰족한 노고단과 오른쪽 반야봉
추억의 돌배나무 아래서
배시시 웃는 수줍어하는 산목련
천왕봉 오르는 길
통천문, 이곳을 통과해야만 천왕봉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고 한다.
천왕봉 오른쪽 능선
식물종 복원 중
눈앞에 있는 천왕봉
중산리로 내려가면서 보이는 천왕봉
겨우 남아 있는 중산리 길의 철쭉
개선문
다 내려와도 천왕봉이 보인다.
개다래 덩굴
망바위
칼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