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사계

제주올레 20코스

반야화 2015. 9. 30. 12:35

비가 온다. 잠시 오는 비라면 별 문제없겠지만 하루 종일 온다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지만 일정에 여유가 없으니 오늘은 우중 올레가 될 것 같다. 지난번에도 하루 종일 비를 맞아서 비옷을 입어도 몸은 땀으로 젖고 신발까지 젖어서 불편했는데, 그러나 높은 곳에서 하시는 일을 낮은 내가 어찌 피할 수 있으리. 훗날 언젠가는 나의 날개를 접어야 할 때가 오면 하나씩 꺼내보며 웃을 수 있도록 이것 또한 노후준비로 마련하는 거라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때가 온다 해도 난 후회하는 일 없이 나의 낡은 몸까지 잘 써먹었으니 어떤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 해도 다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현재에 충실하기로 맘먹는다.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현재에 충실하라는 어느 스님의 말씀이 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터미널에서 701번 동회 선일 주 버스를 타고 남흘동에 내려야 하는데 미처 생각지 못해서 그만 성세기 해변에 내렸다. 심한 착각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시작점이 보이지 않아서 결국 사이트에 전화를 하고선 잘못된 걸 알았지만 걸어서 되돌아가기엔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냥 성세기 해변에서 시작하고 도장은 19코스가 끝날 때 찍으면 되겠다는 얄팍한 생각이 들어서 찝찝했지만 비도 오고 해서 그냥 한 지점을 떼어먹기로 하고 걷기로 했다. 해변에 들어서니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마치 태풍 같았다. 우산을 쓸 수도 없을 정도로 비바람이 몰아쳤다. 그래서 성세기 해변 길이 새파란 풀밭에 좁다랗게 정다워 보이는 길을 우회해서 차도로 걸었다. 바닷가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바람의 세기는 약해져서 우산을 쓰고 비옷도 입었지만 지난여름에 비하면 그리 덮지도 않고 괜찮았다, 성세기 해변은 비가 와도 너무 아름답다. 휘몰아치는 파도까지도 곱게 푸른빛을 흩날리고 발자국 없는 해변도 너무 깨끗하고 물빛 아름다운 해변인데 즐기지 못하는 아쉬움이 큰 날이다.

 

월정 해변까지 바당올레였고 잠시 행원마을 안 길을 돌아 나오면 다시 행원포구로 가는 바닷길을 걷는다. 포구 따라 걷다 보면 광해군 기착비가 있다. 여기서 다음 지점인 좌 가연대로 들어가는 길을 놓쳤는지 바닷가만 계속 걸었더니 연대가 보이지 않아서 핸드폰 길 찾기를 통해서 다행히 길을 찾아서 들어갔더니 특이하게도 이곳은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연대와는 다르게 숲이 우거진 들판 언덕에 있었다 모르고 가면 보이지 않는 곳이다. 좌 가연대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파릇파릇한 밭 사이에 길이 있는데 양편으로 화단에서나 볼 수 있는 붓꽃들이 흐드러졌고 달개비꽃의 보라색과 여러 풀꽃들이 빗방울을 조롱조롱 달고 있는 모습이 너무 이쁜 길을 걸으면서 동심 같은 마음으로 행복감에 젖는다.

 

바다를 지나고 들판을 지나고 마을로 접어드니 계룡 동이다. 계룡동 골목을 지나고 밭둑도 지나 평대리 정자에서 김밥을 먹고 이제 조금 남은 들길로 접어드니 다 캐고 남은 감자 이삭에서 하얀 꽃이 비에 젖어 함초롬히 빗방울을 달고 있고 말리던 깻단도 비에 젖어 그 작은 알들이 흙바닥에 마구 쏟아져서 아까운데도 거둬들이지 않고 그냥 세워 놓았다. 일손이 부족한지 늘 있는 비가 많은 곳의 풍경인지 모를 들길을 자나면 다시 넓은 들판인 이름도 재미있는 뱅듸 길을 걷는데 잡풀이 우거진 들판이란 뜻이란다. 뱅듸 들판 끝에는 작고 이쁜 제주의 옛날 집들이 규모는 작지만 얼마나 이쁘게 가꾸어 놨는지 어느 부잣집 으리으리한 양옥보다 더 아름답고 정겨웠다.

 

각처에서 모인 올렛꾼들은 사전 정보 없이도 먼 길을 오직 파랗고 빨간 리본 하나 믿고 길을 떠난다. 그런데 오늘같이 리본이 비에 젖으면 나뭇가지나 전봇대에 딱 달라붙어서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매일 나뽈거리며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을 하기가 힘들었는지 리본도 비 오는 날은 쉬는 날인가 보다. 그 리본이 무언의 압력을 행사해도 길을 모르는 우리는 그에 따를 수밖에 없다. 말 한마디 없어도 바람결에 방긋 웃어주면 나그네는 어디로 이끌지도 모르는 길을 따라간다. 고맙기도 하고 말 없는 그 끈의 위력에 복종하며 오늘도 비에 젖으며 바람에 바르면서 한 코스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마음이 너무 편안하다. 비도 바람도 나의 발길을 막지는 못하는 끈질긴 집념이 있는 일이다.

 

 

김녕 성세기 해수욕장

 

 

 

 

김녕 해안숲길

 

 

행원포구

 

 

 

 

돌담 틈으로 보는 마늘 심는 주민들

 

 

 

광해군이 제주도에 유배를 왔다는 건 놀라웠다.

왕도 유배를 겪었다는 걸 처음 알았네.

 

여기서 좌 가연대를 찾아들어간다.

 

 

가좌연대

 

 

 

 

 

 

부추꽃

 

 

 

 

 

 

 

 

 

 

 

 

 

 

 

세화 해수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