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제주올레 완클 축제 남한산성

반야화 2018. 4. 30. 16:00

제3회 제주 완주자 클럽 축제 경기지부 주관

2018년 4월 28~29 양일간

장소:남한산성과 양평

첫날:남한산성

 

인연이란 참 묘하다.시작하는 모든 것은 다 인연으로부터다.

경기도를 대표하는 장소가 많지만 하필이면 남한산성으로 정해진 것도 어찌 보면 인연에 끈 달린 보이지 않는 선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세상의 인연 줄이 된 네트워크를 통해 작은 만남의 장이 커지고 단체가 되고 안에서 밖으로 나와 오늘 `남한산성`여기까지 오게 됨은 생전에 산성을 쌓을 때 성돌 하나라도 얹었던 선업의 공덕으로 윤회를 거쳐 다시 와서 걷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4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그 시대에는 경기도에 있는 성이라 해서 경기도 사람만 성을 쌓았겠는가, 조선 팔도의 부역자를 다 모았을 테니 우리가 지금 전국에서 모여 함께 복원된 이 아름다운 성을 걷게 된 것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사건 같은 인연이란 생각이 든다.

 

그동안 완주자가 되고 두 번째 올레를 걷게 되었지만 난 한번도 걷기 축제나 완주 클럽의 축제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 모임의 분위기나 진행과정을 알 수가 없다. 그런 가운데 이번 축제를 경기도에서 주관한다고 해도 별 걱정 없었는데 지부장님과 총무님이 우리가 함께 힘을 합해서 행사를 치러야 한다고 말한 후부터 괜히 걱정도 되고 어떻게 도움이 될지 하루하루 다가오는 시간이 기다림과 설렘보다는 걱정이 더 많았다. 무엇보다 이왕 주관하는데 잔치집에 손님이 없으면 무슨 축제가 되겠나 싶어 그것이 걱정이었는데 버스 두 대에 나누어 탈만큼의 인원이 모였다. 그것이 전과 비교했을 때 적은 숫자인지 많은 숫자인지도 잘 모르지만 첫 경험의 잔치인데 모두에게 즐겁고 행복한 추억 한 보따리 안기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행사를 앞두고 미리 답사를 했다.답사 때에만 해도 진달래 붉은 선홍색만 있고 성체의 흙색과 성체의 뼈대가 다 보였는데 다시 찾은 성은 2주 만에 완전 초록색이다. 걷기의 달인들과 좋은 길만 걸었던 그 생동감 넘치는 자연을 닮은 마음씨와 똑같은 계절에 함께 걷게 된 이 길 위에서 모두가 세파란 청춘의 초록물이 베어들 것만 같은 길을 들어서는데 입구서부터 벌레 입자 욱 하나 없는 숲을 이룬 나뭇잎에서 풋풋한 향기가 젖어 들어 몸속에서 흘러 없어지지도 못하고 쌓여서 옛 성의 이끼 같은 세월의 찌꺼기들이 말끔히 씻어지는 듯하다. 그 푸르른 숲을 감싸 안고 휘어지면서 언뜻언뜻 흰 뱀 같은 긴 여장의 옥개석만 보이는 성이 너무 이름답다.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이 되고 성체가 온전하게 남은 세계유일의 성이라지만 역사 속으로 들어가면 발자국 하나하나마다에 눈물이 고이는 슬픈 역사를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스스로 갇혀버린 성이 안식을 주는 곳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감옥이 되어버린 곳에서 한겨울 혹한과 싸워야 하는 병사들의 고통을 봐야 하고  앞날을 점칠 수 없었던 임금의 통한의 울음이 총 안으로 흘러나갔던 약소국의 설움이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쓰리다. 그 긴 겨울에 양식도 떨어져 가고 땔감도 떨어져서 절의 행랑을 뜯어서 땔감으로 썼다니 그 궁핍함이 더는 견디지 못했으리라. 그 통한의 설움 속에서도 티끌만 한 아름다움이 있었으니 그것은 밤이 되면 검은 정적 속에서 오직 별빛만이 성 안에 오롯이 담겼을 그 반짝임이 어떤 희망의 빛이 되길 간절히 바라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본다.

 

푸르름 속에서 성을 걷다보니 당시에도 숲이 무성한 때였더라면 높은 벌봉에서도 행궁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고 포를 쏜다 해도 적중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러나 적들은 언 강을 이용할 절호의 기회가 겨울이었으니 당할 수밖에 없었겠지. 잊자 잊다, 세월은 흐르고 후손에겐 문화유산으로 남았으니 그저 감사하고 우리가 잘 지켜내야 하는 의무를 저버리지 않도록 보존하는 일만이 남았다.

 

성길 전체를 다 돌면 더 아름다운 모습을 담을 수 있었을텐데 일정에 맞게 시간 조절도 필요하고 성을 보수하는 곳도 있고 복원하는 곳을 막아두어서  다 돌아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계절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걸었던 꽃길이 행복한 추억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이고 다행히 아무 탈 없이 마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다.

 

지하문(남문) 성의 정문,임금이 성으로 들어온 문

 수어장대를 향하여 가는 예감 좋은 출발

 

 

암문, 적들의 눈에 띄지 않게 드나들 수 있는 비밀의 문을 성 곳곳에 두었다.

 

소나무의 품이 넓어서 단체를 다 품어줄 만큼 넓은데

연출은 역시 어려움이다.

 

이시백 수어사의 재현일까?

군사들이 밤 중에 야습을 가하자 갑옷도 입지 않고 병졸들보다 앞서 화살을 쏘다

적의 화살을 두 발이나 맞았으나 전투가 끝날 때까지는 이를 숨기고 끝까지 지휘했다고 한다.

수어장대를 지나 서문으로 가는 길

 

여장과 여장사이(성체 위의 담장)

 1개의 여장에 있는 3개의 총안, 이 부분을 1 타라고 함.

끝부분 두개는 근총안, 중간에 있는 건 원 총안,

근총안은 성체 바로 아래를 향하고 있어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에게 총을 쏠 수 있도록 해서 사진에도

밖이 비치지 않고 중간은 멀리에 있는 적을 공격하가 위한 것이어서 사진에도 선명한 차이가 보인다.

 

원총 안으로 보이는 도화

서문지나 국청사 터가 아닐까 싶은 곳에서 점심을 먹는데

메뉴가 여러 가지, 메뉴보다는 자연의 찬으로 입맛이 살아나는 즐거운

점시시간이 되셨을 거라 생각한다.

 

제주지부에서 오신 분들

 

 

가장 높은 서문(우익 문)

이 아름다운 길이 당시 치욕의 길이다. 산성에서 가장 험하고 높은 곳이며 삼전도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해서

임금은 이 길로 삼전도로 가서 적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행해야 했다.

1636년 1월 30일,

연주봉 옹성 암문

옹성 여장 사이로 본 풍경

 

높은 옹벽 성체가 당시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곳

북장대 터

아름다운 바깥 성체에는 세월의 이끼가 겹겹이 성을 갉아먹고

위에는 복원된 여장의 때 묻지 않은 후손들의 손길.

 

북문(전승문)

이곳에서 그나마 싸움다운 전투가 치열하게 이루어졌던 곳이다.

최대의 전투였으나 최고의 참패를 했던 곳인데 대문 이름에 온전할 全자가 들어간 全勝門이라고

현판이 걸려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전승문을 휘돌아........

 

 

오월이 되면 가장 많이 피는 병꽃이다.

벌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제까지는 걸을만했으나 여기서부터 좀 힘든 코스, 남한산성의

깔딱 고개 같은 곳, 여기를 오르기 싫은 일부의 회원님은 우회하고

일부는 헉헉대며 올라간다.

봉암성 암문인데 다른 암문과는 달리 홍예의 형태다.

비밀의 문이라기보다는 대문 역할을 했던 곳.

봉암 성문, 홍예로 되어 있다.

이곳은 청나라 용골대가 벌봉으로 쳐들어와서 행궁을 훤히 볼 수 있었던 곳이며

아래 망월봉에다가 홍이포를 설치하고 포를 쏘아대던 곳이어서 위험을 느끼고 후에

숙종 때 본성 안으로 이중으로 쌓은 성이다. 옛 성체와 새 여장의 조화가 한눈에 보이고 성문은 아픔이 사라진 채

아름답기까지 하다.

 

노란 각시붓꽃과 보라색이 너무 이쁘다.

 

 

한봉성으로 이어지는 외성, 본성 바깥으로 이중으로 쌓아서 한봉까지 이어진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한봉이 궁금해서 다시 가보고 싶은 성길이다.

벌봉의 암봉에 철쭉이 드리워지고

처음 답사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말발도리꼿

바위틈에서 잘 자라는 꽃

열악한 환경을 좋아하는 꽃이 어쩌면 당시 성을 지키던 군사들의 넋이 아닐는지?

백의민족의 영혼 같은 순백의 꽃이 이쁘면서도 애잔하다.

서어나무,나무의 몸체가 마치 호랑이의 발톱 자욱 같다.

외성 암문

벌봉에 올랐다가 봉암성으로 돌아나간다.

 

초록 성체에 핀 말발도리 꽃 같기도, 백합 같기도 한 미영 씨

사진봉사에 열정을 쏟고 있는 김정운 님,

정작 본인 사진은 없는 정운 씨를 위하여.

장경사 쪽으로 하산하는 아름다운 철쭉 길

 

장경사,

불교탄압으로 산속으로만 숨어들었던 사찰이 북한산성과 남한산성 등

산성을 쌓은 부역을 거의 담당했던 승병들을 위하여 숙소 등 편의를 위하여 쓰였던 곳이다.

명칭만 절이지 용도가 달랐던 곳이어서 현재 이렇게 성을 쌓은 공덕으로 사찰로 대접받는 것 같다.

 

망월사는 입구만 본다.

절 뒤편 망월봉에 포대가 있었으니 얼마나 불안했을지가 보인다.

망월사는 산성을 쌓기 전부터 있었던 절이다.

3개의 사진은 동문과 멋있는 성체,

성 중에 현재는 가장 아름다운 곡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동문 밖 수문.

아마도 이곳에 계곡물을 가두어서 성에 공급되었을 것 같다.

 

동문 건너편에서 버스에 오를 예정이었는데

차질이 생겼다. 차를 세울 수 없다 해서 주차장까지 걷는 길인데 난 오히려

이렇게 걸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저 아름다운 대열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