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동 우면산
태풍 링링이 지나간 산천은 초록비로 젖어 있었다.
추석을 앞두고 찾아오는 태풍이 가장 무섭다. 애써지어 놓은 농작물의 결실을 앞두고 있는데 초토화를 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자연재해를 어떻게 막을 수가 있으랴만 어쩌면 그 모두가 나이가 들면 병이 자연스레 찾아오는 것처럼 지구의 나이도 시간 개념으로 따지면 인간이라면 생명체를 실은 무게로 엄청난 세월 동안 견뎌온 지금 병을 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란 병원균 같아서 불치병을 앓으면서 스스로를 치료하는 과정은 인간에게 엄벌을 내리기 위해 재앙을 일으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앞으로는 지구의 재앙이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제법무아"라고 했다. 지구도 그 법칙에 따라서 언젠가는 공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겪게 될 것이고 내가 잠시라도 이 아름다운 지구에 승선해 있다는 건 참으로 경이롭고, 감사하고 행운아이며 나란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해 준다.
링링이 지나고 이튿날 오후에 잠시 가까운 양재동에 있는 우면산을 걸었는데 어느 해 산사태가 난 자리는 튼튼하게 잘 보수되어 있었고 좀 더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바닥에는 태풍이 나무의 순을 어쩌면 그렇게 정교하게 쳐 두었는지 초록비를 내린 것처럼 온통 바닥이 초록으로 덮여 있어서 마치 사람의 일손으로 순을 쳐서 전지작업을 한 것처럼 나무의 끄트머리만 쳐 두었다. 그런 과정이 자연적으로 나무의 수형을 잡아주어서 나무가 삐죽하게 자라는 것이 아니라 균형 잡힌 형태로 이쁘게 자랄 수 있게 만드는 것 같다. 바람을 세게 맞은 나무들은 꺾어지고 뽑히고 산 전체가 자연의 매를 맞은 것 같았다. 한 순간 견뎌내지 못하고 쓰러져버린 나무들을 보면 무척 마음이 아팠다. 그런 사이사이를 걸으며 아파하고 한편 위로하면서 걸었던 한 나절은 10 킬의 길을 걸었다.
양재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