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 습지
순천에 갈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드디어 기회를 잡아서 가는 날이다.
너무 유명세를 타는 관광지여서 와요로만 즐기다가 드디어 육화의 풍경을 보게 되니 나름대로 그려지는 그림을 안고 떠나는 설렘이 가득하다.
세상의 모든 길은 내가 대문을 나서는 순간이 꼭지점이 되어 부챗살 같은 모습으로 퍼져 나가고 길은 어디서든 다 연결이 되어 길고 긴 실타래가 되기도 한다. 테마가 있는 길이 제주올레가 원조가 되더니 요즘은 지방 곳곳에까지 테마의 길을 만들어서 드디어는 코리아 둘레길이 생기는 계기가 되어 이번에도 순천으로 코리아 둘레길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순천으로 간다. 이제까지 걸었던 길들이 부챗살 삼분의 일 정도를 만들었을까, 코리아 둘레길을 다 걷는다면 나의 부채는 완성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큰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이 얼마나 원대한 꿈인가.
갈대습지로 들어서기 위한 무진교,
이 다리 이름을 보면서 바로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떠오른다. 이곳 순천 출신인 작가가 쓴 무진기행의 실제 배경이기도 한 순천만에 소설 속 풍경 같은 안개가 드리운다면 또 얼마나 색다른 풍경이 될지를 연상작용을 일으키면서 간다. 작가는 분명 안갯속에 어렴풋한 갈대숲을 보았을 것 같다.주인공인 윤기준이 서울에서 출세가도를 달리다가 잠시 고향인 무진으로 내려와 하인숙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지만 다시 하인숙을 버리고 서울로 떠나버린 후 남겨진 하인숙의 모습이 안개 속에 아련히 그려지기도 한다. 하인숙에게 윤기준은 아마도 오리무중의 안갯속 같은 그의 의중을 알 수가 없어 애태웠을 것이다. 실제였다면..........
가을색으로 익어가는 갈대의 바람결 따라 만들어지는 인파의 실선이 멋진 풍경이 된다.
멀리서 보이는 무진가요
순천만 갈대숲의 전도를 볼 수 있는 용산전망대 가는 길, 길이 너무 좋다. 야자매트의 쓰임새가 고마운 길이다.
중간 전망대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풍경에 두근거리는 가슴.
용산전망대에서,
선암사에서 이어져 이곳 하구까지 다다른 이사천과 동천이 흘러드는 하구에 만들어지는 갈대습지, 마치 갈대의 빅뱅처럼 작은 몇 개의 뿌리에서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점점 넓어져 지금은 상상 이상의 드넓은 갈대군락이 만들어졌다. 와서 보기 전에는 이 정도로 광대할 줄은 몰랐는데 대단하다. 그리고 습지의 진풍경은 습지에 만들어지는 물길의 곡선이다. 높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곡선의 미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는 현장이며 유려하고 유장한 곡선의 미에 흠뻑 빠져든다. 자연의 모습은 각진 게 없다. 인공으로 만드는 사물들은 삼각, 사각, 오각 등 모양으로 각을 만들지만 자연의 모든 생김새는 각이 지지 않아 원융무애 한 통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쭉 뻗은 고속도로 같은 모습은 날카로워 보이고 정감이 없다, 그뿐인가, 유럽의 유명한 성당들은 더 뾰족할수록 더 아름답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미는 한복 저고리의 소매처럼 곡선의 미를 강조하고 그것이 아름다움이라고 늘 느끼면서 산다.
한쪽에는 갈대군락이고 다른 쪽에는 칠면초의 변신이 진행 중인 자연의 경이로움이다. 같은 자리에서 어떻게 저런 모습을 만드는지 자연이면서 연출 같은 풍경이다. 자세히 보면 칠면초와 함초의 생김새는 다르다. 함초는 밑에서부터 줄기가 갈라져 올라오고 잎이 두툼한데 칠면초는 하나의 줄기가 올라와서 갈라지는 걸 알 수 있고 잎이 가늘게 보인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와온 공원을 향해 걸어가는 방조제에서 볼 수 있는 칠면초 군락. 이 멋진 풍경이 순천의 보물이다.
물의 성품이 만들어내는 곡선이다. 뭔가가 막히면 뚫기보다는 돌아서 흐른다. 장애가 있으면 맞서지 않고 돌아서 흐르는 하심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짱뚱어가 만들어낸 그림, 작고 가벼운 것이 지나다니는데 자국이 만들어지는 걸 보면 갯벌은 참 유순하고 보드라운가 보다. 짱뚱어만 이해할 수 있는 추상화다.
방조제 둑길이 너무 아름다워서 지루한 줄 모르고 간다.
어느새 하루를 마감하려는 시간은 노을로 말한다.
와온 공원의 일몰 풍경이 이 정도로 멋질 줄이야......
새들이 군무는 보여주지 않고 놀기만 하네, 잔잔한 수면에 비치는 작은 반영이 너무 이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