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봉화 세평하늘길

반야화 2019. 11. 16. 12:05

봉화 낙동강 세평 하늘길:승부역에서 양원역을 지나고 분천역에 이르는 12.1킬로의 트레일,

세평 하늘길, 참 특별한 이름 하나만으로도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명칭이다. 간혹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지나다니는 길로만 알았던 그 길을 내 두발로 걷게 되다니, 기차를 타면 한쪽 면만을 보게 되겠지만 트레킹을 하면 그 길에 있는 모든 것을 느끼고 보고 만지는 즐거움이 있으니 기차에 비하겠는가.

 

"좋다"라는 말 한마디 드러내면 그 말 속에 자연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그릇에 온갖 것이 다 들어차게 된다. 그래서 세세한 표현을 다 못할 때는 "좋다"라는 말 한마디의 그릇에 다 담아내고 만다. 산이 얼마나 높고 골이 깊었으면 보이는 모든 것을 세평으로 표현했을까, 높고 깊은 산골 역에 근무했던 한 역무원의 눈에 보이는 것들이 날마다 답답한 마음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한 글귀가 더 유명한 승부역이다."하늘도 세평이요/꽃밭도 세평이나/영동의 심장이요/수송의 동맥이다". 작은 세평 속에 큰 동맥이 들어찬 멋진 글귀를 표현한 마음을 보면 가장 작은 것에 가장 큰 것을 담을 줄 아는 화엄경의 원리를 깨달은 큰 마음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든다.

 

봉화는 경상북도지만 북쪽으로 강원도 영월,태백,삼척과 경계를 이루고 동쪽에 울진, 남쪽으로는 안동과 접하고 있어서 경상북도에서는 가장 추운 지방이다. 강원도와 접하고 있어서 사투리까지 삼척과 비슷한 게 있다. 봉화에는 청량산도 가을 단풍 명소로 유명한 곳이다. 봉화로 들어가서 안동으로 나오는 청량산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해 가을이 잊을 수가 없는 곳이다. 두 번이나 다녀오고 내 고향 언저리지만 세평 하늘길이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곳에 갈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좋아서 큰 기대를 안고 갔다. 새벽안갯 속을 뚫고 달려가던 차는 충청도를 지나자 차츰 하늘이 보이더니 봉화를 지나자 안개가 걷히고 구름으로 바뀌면서 파란 조각하늘을 드러 내더니 가장 큰 관심사인 미세먼지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그리고 석포면에 들어서자 멀리 태백산 권역에 우뚝하게 솟아오른 두 산봉우리가 눈길을 확 끌었는데 청옥산과 연화봉이란 생각이 들었다. 위에는 높은 산봉우리, 아래는 낙동강 지류인 회룡천이 흐르면서 세평 하늘길이 멀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세평 하늘길 승부역에 들어서면 해발 500미터의 높이가 느껴지지 않는 곳에 회룡천이 낙동강을 찾아가는 여정에 있고 가장 먼저 현수교를 지나고 앙증맞은 귀여운 다리를 건너 자갈돌이 하얗게 빛나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낙동강 상류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내겐 추억을 되살리는 장소였으며 그 추억 속에는, 손님이 오면 가장 대접을 잘하는 것이 쏘가리와 은어를 잡아 강변에서 매운탕을 끓여주는 것이었고 여름밤이면 친구들과 강으로 가서 목욕을 하고 젖은 수건을 머리에 얹어 달빛에 말린다면서 강물에 부서져 내리는 달빛 아래서 "은파를 넘어서"라는 가곡을 동내 언니가 불러주면 따라 배우고 납작한 돌로 만든 방에서  놀던 기억이 이즘에 생각하니 보석같이 아름다운 추억 조각이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먼저 일어나 강변을 서성이며 마치 친정에 와 있는 느낌으로 작은 마음이 요동치던 그 시절을 음미했다. 작은 나뭇잎에 이름을 써서 물에 띄우면"나의 살던 고향"에 닿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문득 친정 생각이 났다.

 

세평 하늘길 양쪽으로는 천 미터를 넘나드는 산들이 이어져 있고 그만큼 골도 깊고 강도 길게 이어져 흐른다. 양원역에 이를 때까지 위에는 철길, 아래는 물길, 우리는 철길과 물길 중간 트레일에서 세 가지의 평행선 길을 걸었다. 친구 같은 세 길은 비교할 수 없는 저마다의 특색을 지닌 평행선이다. 그 좋은 길을 따라 걷는 즐거움과 행복이 너무 감사했다. 양원역을 지나면 짧은 체르마트길이 이어진다. 지대는 더 낮아진 것 같고 다시 강변길을 걷다가 징검다리에 시멘트 상판을 얹은 것 같은 나지막한 다리를 몇 번 건너는 길이 참 아기자기하고 이쁘다. 체르마트길 끝부분에 있는 용골 쉼터를 지나고 산을 하나 넘는데 긴 물줄기만 걷다가 낙엽이 쌓인 산길 하나가 끼어져 있는 것도 너무 좋았다. 산길이 끝나면 비동의 1,2교를 지나면 이제 분천역 가는 길이다. 분천역 가는 길은 차도가 있는 들판길을 다소 길게 걷고 나면 분천역에 이르는데 이곳은 산타마을이다. 해 질 녘이 되어가고 희미한 빛 아래 작은 산골마을 이야기가 곳곳에 들려오는 듯한 참 이쁜 오지마을에 찾아온 흔적들이 고맙기까지 한 고립된 마을 같았다. 약 12킬로가 넘는 길을 약 5시간 걸었다. 그런데도 몸은 너무 가볍다. 친정에서 불어오는 바람 맛이 좋고 익숙한 고향 향기가 좋아서 일지도 모른다.

 

접근하기 쉽지 않은 트레킹을 할 수 있도록 데려다 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차창으로 찍은 사진, 석포면 태백산 권역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잘 생긴 산봉우리가 보이는데 청옥산과 연화봉이다.

봉화군 석포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강줄기를 따라 더 깊숙이 들어가는 길에 있는 회룡천이다. 승부역과 분천역 중간쯤에서 낙동강으로 변하는 지류다.

 

승부역 현수교

 

 

 

회룡천 다리

강변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 얼마 만에 해보는 즐거움인지, 어린 시절 낙동강 마을에 살면서 늘 있었던 놀이였다. 소꿉놀이를 하면서 납작한 돌들을 깔아서 방을 만들어 놓고 친구들과 놀던 그 시절을 맛보는 순간이다.

 

 

 

 

 

 

 

 

 

36번 국도, 멀리 왼쪽으로 보이는 영주에서 울진을 잇는 국도가 보인다.

 

양원역 가는 길의 철교 밑으로 내려와서 잠시 후식하면서 우리 셋이 돌탑을 쌓았다.

 

 

가장 늦게 노랗게 빛나는 낙엽송 단풍이다. 다른 단풍이 질 때면 나도 단풍이다라고 더 농염한 색채를 드러내는 듯이 검푸른 소나무 틈바구니에서 멋진 늦가을 정취를 보여 주어서 가을이 완전히 끝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풍경이 참 좋다.

 

 

회룡천이 승부역과 양원역 중간쯤에서 낙동강 상류지점으로 흘러들어 낙동동이 된다.

 

 

 

양원역, 승부역과 분천역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양원이란 낙동강을 기준으로 서측은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원곡마을, 동측은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 원곡마을이다. 봉화의 원곡마을과 울진의 원곡마을, 두 원곡마을의 이름을 따서 양원이란 이름이 되었다.

 

 

 

낙동강의 비경, 낙동강의 상류는 구간마다 굽이쳐 흐르면서 아름다운 곡선을 만든다. 그것은 안동 땅에 들어서면 더 두드러져 예천 회룡포를 만들고 영주에서는 무섬마을, 하회마을 등 몇 개의 물돌이 마을을 만들어내는 어떤 장인의 솜씨 같은 자연의 손길이 무척 아름다운 비경을 만든다. 그뿐 아니라 강폭이 좁은 곳에서는 여울져 흐르다가 거대한 절벽을 만나면 잔잔하게 여유를 부리기도 하고 소를 만드기도 하면서 휘돌아 흐르는 그 길이 좋아서 안동에 가면 사람도 자연도  흐름을 즐기는 시제 속에 들어가는 시화의 일부가 된다.

 

 

 

용골 쉼터, 이곳을 지나면 체르마트길이 끝나면서 산봉우리 하나를 넘어서면 낙동강 줄기 따라 분천으로 이어진다.

 

트레일 중에 유일하게 하나의 산봉우리를 넘게 된다. 이 산을 넘으면 비동마을이 나오고 비동 두 개의 다리를 지나면 분천리 쪽이 된다.

 

 

봉화에 새벽까지 비가 와서 길 위로 물이 흐르니 빛을 받아서 마치 눈길을 걷는 듯하다.

분천 가는 길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정차하고 있다.

이글루 모양의 계단 안에는 다녀간 흔적을 남긴 쪽지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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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천리 산타마을, 지금은 그냥 작은 산골마을로 보이지만 한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면 크리스마스 엽서 같은 동화 속 마을이 될 것 같은 연상이 충분히 되는 작고 이쁜 마을이다. 크리스마스에는 실감 나는 산타마을이 될 것 같아 한 번쯤 이 마을에서 쉬고 싶은 정감 넘치는 마을이다.

 

 

분천 역사 한편에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입고 사진을 찍으면서 체험하는 공간도 잘 꾸며져 있다.

 

저녁으로 먹은 곤드레 비빔밥,

오후 5시가 넘어가자 벌써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길을 걷는 내내 즐거웠다.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외 딴 마을 길목에는 가로등도 없어 어쩌다 보이는 불빛은 마치 푸른 신성 별이 내려앉은 듯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