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드부르부니크( 크로아티아)

반야화 2016. 11. 8. 15:06

2016.10.25

자다르에서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아름다운 해안선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선에 선정되었다고 하는 길인데 아드리아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아드리아해의 바다는 모래사장은 거의 없고 절벽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수면이 너무 고요하고 잔잔해서 달려가는 내내 파도를 볼 수 없었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성벽 마을의 역사. 우리는 스플리트와 두부로부니크 사이에 끼어있는 보스니아 땅  네움에서 숙박을 하고 2시간 30분 정도 달려서 두브로브니크로 간다.

 

스플리트와 두브로브니크 사이에는 보스니아땅 네임이 끼여 있는데 우선 크로아티아 땅에 보스니아 땅이 송곳처럼 꽂혀있는 사연이 재미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리 정보를 알고 가면 아는 만큼 보인다고 재미는 배가 된다. 크로아티아 영토에 쐐기처럼 박혀있는 보스니아 땅 네움은 17세기경 아드리아해 연안 알 마티아 지방 대부분이 베네치아 영토여서 지중해를 재패한 베네치아가 자꾸 남하해 오자 위협을 느낀 크로아티아 가이  땅을 오스만에 팔아서 오스만의 힘으로 베네치아를 막고자 했다. 그런데 오스만이 전쟁에 패하자 유산을 물려받은 보스니아가 승계를 해서 보스니아 땅이 되었다. 약 해안선 20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보스니아 땅을 밟지 않고 다닐 수 있는 스플리트와 두브로브니크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고 싶어 한다고 한다.

 

두브로브니크의 성벽마을은 너무 유명하고 그림으로 많이 봤기 때문에 오히려 직접 봤을 때 실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도상으로 보면 크로아티아 최 남단 반도의 뾰족한 꼭짓점이다. 광활한 크로아티아라는 나라의 크기에 비해서 아주 작은 성벽 마을이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부섬같은 아름다운 모양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차나 케이블카를 타고 해안가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야 되는데 우리는 승합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길이 너무 위태해서 불안했다. 올라가서 바라보는 마을은 익히 보왔던 그 모습의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그림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마을로 들어가서 보는 작은 마을은 모두가 경이로웠다. 바위의 자연적인 절벽 위에다가 성벽을 쌓아서 더욱 튼튼하고 높아서 어떤 적도 침입하지 못할 정도로 난공불락의 성 안에 건설된 마을이 너무 이쁘고 길은 긴 세월 동안 닳고 닳아서 거울 같았다.

 

존 바이런 시인은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불렀고, 죠지 버나드 쇼는 지상의 천국이라 불렀다. 7세기에 슬라브족의 침공을 피해 차브 타트 마을 사람은 좁은 해협을 건너 해안가 섬 라구사라는 이름의 정착지를 만들었다(. 라구사는 주위에 바위가 많아서 바위라는 뜻) 섬의 맞은편에는 침공한 슬라브족이 라구사를 노려보며 정착해서 이들은 근처 숲에 털 가시나무가 많아 그것으로 울타리를 치고 살아서 털까 시라는  뜻의 드브라바라고 불렀다. 그렇게 해협을 마주 보고 섬과 내륙 쪽에 두 정착지는 북쪽 마을 자톤과 남쪽의 차브 타트까지 뻗어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원수로 살았으나 세월이 흘러 서로 화해하고 12세기에 섬과 내륙을 갈라놓았던 해협을 돌로 메우고 라구사와 드브라바는 하나로 합쳐 두브로브니크가 되었다.

필 레게가 트는 서쪽 문 구시가지 성문인데 여기서부터 두브로브니크의  시작이다.

 성문 위에는 두브로브니크의 저항정신과 자유의지를 상징하는"세상의 모든  금을 주어도 자유는 팔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남북으로 1537년에 완공된 도개교 위로 들어 올리는 다리가 걸려있는 중세시대의 성문이고 다리 밑 해자는 공원이 되었다. 아치형 문 위에는 크로아티아  수호신인 성 블라시오의 조각상이 있다.  동쪽 문은 플로체 게이트다. 스트라둔 대로 필레게이트 안쪽 문 1460년에 완공된 문을 들어서면 거울처럼 반들거리는 길이 동서로 뻗어있다. 석회석과 대리석 양옆으로 중세시대 건물이 배치되어 있는 이 거리가 스트라 둔 또는 플라차 거리라 고한다. 이 길의 사연은 29 터의 거리가 바로 라구사섬과 두 브라차 내륙을 갈라놓았던 해협을 돌로 메운곳이다.  필레게이트 안쪽 문을 들어서면 오노프리오 샘이 있다. 1438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오노프리오가 11.7킬로미터 떨어진 상수원인 리예카 두브로 바츠카에서 물을 끌어와 물을 공급한 식수원이다.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하나 더 있다. 중세시기 서로마가 망한 476년부터 동로마가 망한 1453년까지 약 천년간이다.

 

내전이 일어나서 많은 유적이 파괴되고 있을 때 유럽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성벽 마을을 지키기 위해 성벽에 모여서 인간띠를 만들면서 지켜냈다고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정신이다.

 

 

 

 

 

 

 

 

 

 

나폴레옹의 전승 기념비

성벽에 수호성인인 성 블라시오의 조각상이 여러 곳에 있다.

 

 

 

 

 

 

 

 

피에타상 조각

오노프리오 샘

 

 

 

 

 

로크룸섬이다 이곳은 저렇게 나체로 수영할 수 있는 곳으로 허가가 난 곳이어서

마음 놓고 남녀가 수영을 즐기는데 사잔을 찍어도 되고 카메라를 들면 오히려 포즈를 취해주기도 한다.

성벽과 마주 보고 있는 섬

 

 

 

로크룸섬과 조화로운 붉은 지붕들.

성벽의 요새

여기가 좁은 해협을 돌로 메우고 마주 노려보면서 살던 적대적인 관계를 벗어나 돌로 바다를 메우고 이제는 하나의 모습으로 보이는 필레게이트 안에 있는 스트라둔 거리다. 길의 돌들이 닳아서 거울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