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변산 쇠뿔바위봉
달구지도 않은 쇠뿔을 단숨에 뽑아야 하는 힘을 다 쏟았다.
북한산 염처봉을 겁 없이 오르던 용기는 어지로 가고 요즘은 가는 곳마다 오금을 저리 게하는 구간을 만나면 몸이 먼저 알아차리니 마음도 움츠리게만 된다. 눈 산행을 하고 나서 두 달 정도 산행을 쉬었더니 더욱 힘든 산행이었다.
남녘의 삼월 하순은 초여름 같았다.그래서인지 산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노루귀는 이미 잎이 올라와 있고 겨우 끝물만이 그 가냘픈 목이 갈잎을 헤치고 나와 가늘게 떨고 있었다. 삼월에는 풀꽃이 먼저 피어나고 이어서 생강나무 꽃과 진달래가 피기 때문에 삼월의 산행은 어떤 기다림, 설렘 그런 것이 있다. 그런데 산 중턱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이미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기다림도 설렘도 주지 않고 이미 와 있는 꽃 앞에서 난 왜 이쁘다는 말 한마디 나오지 않았는지, 진달래는 활짝 피기 전에 빨간 입술을 쏙 내밀고 있을 때 가장 반갑고 그 이쁜 꽃송이가 활짝 피어나기를 얼마간의 시간을 주면서 설레기도 하는데 그 과정을 맛보지 않은 채 이미 " 나 여기 왔어" 하는 그 싱거움, 그래서 스쳐 지나가 정상에 올라서니 생각지도 않았던 산자고가 피었고 내려올 때는 야생란도 꽃을 피워서 아쉬움을 달래어 주었다.
쇠뿔봉에서 바라보는 외변산의 산세가 높지 않아도 눈 아래로 보이는 모습의 특별한 절경이 있었지만 안개보다도 짙은 미세먼지 때문에 흐릿해서 자꾸만 눈을 닦아서 보고 싶었는지 손이 눈으로 갔다.언제나 맑은 원경을 볼 수 있을지 봄에는 특히 더 먼지가 심해서 기대하기도 어렵다. 먼지 속에서도 섬 같은 산봉우리들이 변산반도에 떠다니는 듯하고 들판과 파란 보리밭이 아름다운 원경이 맑은 날이면 감탄을 자아냈을 너무 좋은 풍경들인데 그것이 다 묻혀버렸으니 허망했다. 그러나 하나의 거대한 암봉이 마치 마이산의 풍경과 닮아서 그것 하나 보는 것으로 만족되는 산행이었다. 날씨만 맑으면 어디인들 좋지 않으리, 아까운 봄날이 오늘도 먼지 속에서 저물어간다.
산자고
야생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