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도봉산
24절기 중 마지막 절기인 대한의 추위를 절정으로 이제 겨울 추위도 잦아들고 있다. 한 해의 마지막 절기를 기념이라도 해야 된다는 둣 오랜만에 도봉산을 찾았다. 전 날 대설주의보란 예보에 얼마나 들떴는지 내일은 산으로 가야 되는데 누구와 가지, 하면서 짝을 물색하고 있는데 이심전심인지 늘 함께 산행을 즐기던 나의 트레블메이트가 먼저 도봉산 가자며 당장 올라온다고 해서 기대치를 끌어올렸다. 그녀가 옆에 있을 때 너무 좋았는데 먼 곳으로 이사를 간 후 동행할 친구가 늘 아쉬웠다. 옆에 친구가 있다고 다 산행을 함께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고치로 끌어올렸던 기대치는 도봉역에 내리면서 반이 뚝 잘라졌지만 음지에는 고스란히 남아 있을 거야, 지난해의 멋진 설경을 추억 속에서 꺼내어 잘라진 기대를 품고 정상을 향해 갔다. 초입에는 산이 얼마나 메말랐는지 눈 결정체가 보일 정도로 곱게 내려앉은 길에는 눈과 흙이 반죽이 되어도 젖지 않고 푸석거리고 밟아도 미끄럽지 않았다. 산 역시 눈이 고팠는지 흙이 눈을 흡수하지 않고 살려놓은 듯 음지에는 곱게 남아 있었다.
그렇게 많이 오른 산이지만 항상 예상 경로를 벗어나게 된다. 산을 반 정도 오른 어느 지점에서 자운봉이 보인다.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너무나 성스러운 자운봉 일대는 도봉산의 정기를 사방에서 모아서 정상에 기의 결정체를 만들어 우뚝 세워둔 것 같다. 가까이서 보면 일대 봉우리들이 떨어져 있지만 멀리서 보면 여러 봉우리들이 한테 모여 도봉산의 정수가 되어 있는 듯 한 덩어리로 보인다. 아직 저 모습을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억지로라도 끌고 가서 정기의 폭발점을 보여주고 싶다.
자운봉은 눈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그 자체로 너무도 하얗게 빛나기 때문에 굳이 설경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거지. 온 산이 하얗게 덮여도 독야 백백으로 남고 싶은 정신이 깃들어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세월의 풍파에 깎이고 닳아서 눈이 붙을 수가 없는 수직벽이다.
눈이 왔을 때는 편한 길로 가야 된다. 잘 못 들어서서 다락능선 마지막 구간 같은 곳을 만나면 진퇴양난에 빠지기 때문에 성도원 능선으로 갔는데 마치 처음 가는 길 같았다. 선인봉 밑에서 잠시 쉬어서 깔딱 고개 같은 구간을 오르면서 보이는 자운봉 바로 밑에서 압도되는 봉우리들이 일렁이던 가슴을 다 짓눌러버리는 엄청난 기상을 느끼게 한다. 굳이 신선대에 오르지 않아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는 일대의 비경은 신비감으로 더 멋있게 보인다. 정상에 올라서면 정상의 모습을 볼 수 없듯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좁혀지지 않는 마음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친구가 가장 좋은 친구다. 자주 만나 늘 즐겁던 친구인 트레블메이트들이 각처에 흩어져 있지만 의기투합하면 금방 모일 수 있는 친구들이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봄이 되면 다시 만나기로 되어 있는 친구들이 있어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마친다.